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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을 깎아먹는 자가 여기 있소이다‼
"뭐가 당당하다고 아침부터 헛소리야! 밥이나 차려!"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아침당번을 미루지 않았다. 특별한 요리대신 토스트를 만들었다. 채소와 토마토, 치즈, 계란을 올려서 바삭하게 구워진 식빵 두 조각을 덮으면 완성.
-그것도 요리라고...... 근데 아침부터 [비교질]과 관련된 자료는 왜 가져왔어요? 백수주제에!
그렇게 말하면 듣는 백수 서운하다. 그냥 가끔은 현실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어서랄까. 너무 현실감각이 사라진채 꿈속만 헤맬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뭐 자료를 본다고 삶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연봉도 올랐고 물가는 더 올랐으며 원화 가치는 급격히 폭락하는 요즘. 어쩌면 23년 평균보다도 24년 평균치는 더 올라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누가 저렇게 번다고 그래?! 아주 망상을 써놨구만." 누군가는 현실 부정(Denial)을 하고,
"거짓말하지 마! 저렇게 버는 사람 내 주위에 아무도 없거든? 있으면 데려오라고!" 분노(Anger)하는 이도 있겠고,
"하하... 인생사가 다 그런 거지요. 뭐 벌 수 있는 이는 벌면 될 것이고, 아닌 이는 아닌 대로 살면 될 것이니."라며 대충 현실의 일을 타협(Bargaining)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말도 안 돼. 나 빼고 모두가 부자야... 너무 슬퍼." 우울(Depression)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맞아. 나만 함량 미달 인간이었어. 혼란한 세상을 떠나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 결국 수용(Acceptance)을 가장한 체념을 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속칭 [죽음의 5단계]라 일컬어지는 내용에 빗대어 봤다.
아침부터 열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길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의 5단계 중 어느 한 단계를 직접적으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현실에서 40대를 기준으로 줄을 세웠을 때 나온 현실적인 수치이니 반박을 하려면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할 듯하다.
-평균의 함정은 고려치 않아요?
맞다. 평균에는 함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보통은 가장 최상단과 최하단을 제외시켜 다시 또 줄을 세우곤 한다. 그러면 그나마 벌어진 양극화가 좀 덜해 보이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평균에 속하는 삶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평균의 최하단 어디쯤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알죠?
내 아무리 잼민이었어도 집안 돌아가는 꼴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수룩하진 않았다. 지금 쓰는 말이 결코 부모님을 욕되이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 하지 않았나. 그냥 태생이 비천해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현상]중 하나가 [가난]의 모습이었을 뿐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조선 시대가 아니어서 고착화된 신분의 벽을 느끼지는 않았다는 정도랄까. (물론 이것도 깊게 파고들면 또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겠지만, 오늘은 그런 내용을 쓰려는 의도가 아니다.)
매일이 설레지 않는 삶.
자고 일어나면 우중충한 회색빛 세상이 펼쳐지는 느낌.
지극히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느꼈던 평균 이하의 삶이었다. 그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다. 다른 물질적인 무엇도 아닌 [말]이 너무도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었다.
"이제 곧 일본 따라서 우리나라는 빈집이 넘쳐날 거다. 아둔한 자들이 저렇게 집에 목매달고 사는 거지 쯧쯧."
"강남에 있는 X들부터 조져야 돼. 북한에서 한방 시원하게 날려줬으면 좋겠다."
거짓말 살짝 보태서 매일 듣다시피 했던 말이다. 다른 험한 말도 많지만 나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가뜩이나 설레지 않는 삶에 질척거리는 추가옵션을 붙여주다니.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지만 내게 찾아온 [사춘기]는 험한 말에 대한 반발심으로 발현되었다.
'무조건 아빠가 말하는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테다.'
별 거 없는 반발심이었다. 듣기 싫은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겨난 태도였을 뿐이다. 어찌하여 죄 없는 이들이 하루아침에 미사일을 맞고 가루가 되어야 속이 시원하다는 말인가? 내 아무리 호러물을 좋아한다 해도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을 입에 담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지.
그렇게 아빠와 나의 가치관은 점점 반대방향을 향해 멀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중엔 서로 특정 부분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편해졌다. 서로가 느꼈던 거 같다.
'여기서 좀만 더 말을 했다간 그나마 유지되던 혈연의 끈마저 끊게 될 것이다.'
결코 내 행동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나는 나, 아버지는 아버지, 각자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필요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평균의 최상단에 위치했다 뭐 이런 건가요?
그랬으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래도 내가 겪었던 삶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좀 더 나아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추가로 내가 듣기 싫었던 말들을 하고 있지도 않고.
"그러니까 내 말은..."
대체 오늘 무슨 생각을 글로 쓰고 싶었던 걸까?
단지 회한 어린 과거가 떠올라 감상에라도 빠진 건가?
한때는 평균의 어딘가에 (되도록이면 높은 곳) 위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았었다. 지금은 백수로 지내다 보니 자기 합리화를 하며 자연인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다.
돈을 벌 땐 늘 "그래도 밥값은 하고 있구만."이라며 나름의 안심존(zone)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수영장의 물이 빠지고 나면 누가 수영복을 벗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던 버핏형님의 말이 오늘따라 뼈아프게 느껴진다.
'거적데기라도 걸쳐야 하는데.'
어제 청소업체(?) 직원으로 근무하던 분이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내 딴에는 혹시 모를 큰 문제라도 생긴 줄 알고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는데, 전해진 내용은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였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네?"
"저...... 관둬요."
"......"
청소를 하며 연이 닿았던 분이었기에, 그의 퇴사 이야기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에게 생겼을법한 숱한 고통의 순간이 전해져 왔다.
"앞으로 저 대신 다른 관리자분께 청소현황 얘기 나누고 하던 일 해주시면 돼요. 정말 고마웠어요."
"저도 감사했어요. 어디 이직할 곳은 구하셨어요?"
주제넘게 누가 누굴 걱정하는가. 그래도 말은 해볼 수 있으니.
"아니요. 일단 퇴사하고 쉬면서 구할 생각이에요."
"......"
문득 그의 모습에서 나의 마지막 퇴사 모습이 느껴졌다. 대체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내 코가 석자이기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마지막 통화를 나눴다.
'고민의 시간이겠구나.'
그도 나처럼 평균을 벗어나는 삶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와 연이 닿았던 그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뿐이다. 어쩌면 '그'를 '나'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주절주절 하다 보니 갈피를 잃어버렸다.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이 상태에서 어떻게 마무리 짓지?'
약간의 감상을 덧붙이자면, "이래서 제가 망상을 위주로 글을 쓰는 겁니다!"라고 할 수 있겠다. 현실의 얘기를 떠올리고 쓰다 보면 주절주절 떠오르는 단상대로 정리 없이 써져 버리니까.
-아니 본인 글쓰기 능력이 평균을 하회하니까 그런 거면서?
"그러니까 내 말은-"
대충 힘내보자... 뭐 이런.
-이딴 식의 결이라면 가만 안 둘 테다?
아니 쓰는 것도 내 자유고, 안 쓰는 것도 내 자유이거늘?!
-안 읽는 것도 자유라고 배웠습니다만?
"용서... 용서해 주십시오."
원래 잘 알지 못하는 건 함부로 다루는 게 아닌 법인데. 괜히 뭐가 있을 것처럼 평균에 관한 자료로 얘기를 꺼내서 이 사달이 나버렸다.
그냥 내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님을 표식 하기 위해 시작된 글이었다. (물론 결과는 보시다시피.)
통찰력 있는 글을 기대했던 분께는 죄송할 따름이다. 그래도 평균의 밑단 어딘가에 살았던 이가 평균을 향해가며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대다수의 소시민이 그렇듯 나 또한 같은 범주에 속해 있을 뿐이니까. 단지 내게는 좀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탓에 뭐라도 쓰고 싶었을 뿐이다. 속죄의 의미로 평소보다 분량은 좀 더 썼다. 과연 이렇게 무용하게 늘려 쓴 글을 좋아해 주실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하루도 다들 행복하시고, 힘내시고, 소중한 이와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하루 되소서. 한 가지 더 바라옵자면 내일의 글은 좀 더 유용함에 가까운 글이 써지기를 희망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