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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무덤 파는 이야기에 진심인 사람

198 걸음

by 고성프리맨

2025년이 되었지만 크게 체감이 되질 않는다.

퇴사 이후로 쭉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고 있어서인지, 그저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 정도만 느껴진달까.

그러던 중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대리님."

-잘 지내셨죠?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청소 계약을 맺고 있던 회사 대리와의 통화. 살짝 불안했다.

평소 큰 친분관계를 유지하지는 않았기에, 좋은 소식일지 or 나쁜 소식일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벌써 계약한 지 2년이 지났네요. 저희는 계약 연장을 진행했으면 좋겠는데-


다행이다. 혹시라도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할까 봐 살짝 두려웠다.

누군가에겐 비루해 보이는 청소 자리여도 지금의 내겐 소중한 [부업] 중 하나.


"오빠! 근데 그 청소를 누가 하지?"

"다, 당신이 하지."

"그럼 좀 조용히 해. 남들이 들으면 오빠 혼자 다하는 줄 알겠어?"

"......"


여하튼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이어갔다.


"아 감사합니다. 저 혹시 급여 인상도 가능할까요?"


이 얘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떨었던가.

직장인일 때도 연봉협상만큼은 큰 자신이 없었는데,

계약직으로 일할 때도 여전히 쉽지가 않구나.


-아. 네네. 일단 경영진과 상의는 해봐야 될 거 같아요. 그럼 상의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으니 비로소 긴장이 한발 뒤로 물러났다.




'생각해 보니 무탈하기만 했던 건 아니구나.'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름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없진 않았다.

매번 그때마다 긴장했고, 해결되면 다시 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고비를 넘겼어."


어디 보자. 이거, 회사 다녔을 때보다도 더 고비가 많았잖아?

평화롭게만 흘러갔다 생각했던 지난 순간을 돌이켜보니 꽤 많은 [위기]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위기였었다.

그중 몇 번은 정말로 심각했었는데.


지나고 나서 보니 피식-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거지,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아찔해질 게 분명하다. 지금의 평화로움이 공짜로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25년에도 크고 작은 이벤트는 벌어지겠구나.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해야겠어.




"오빠! 나 강의하기로 했어!"

"어엉?"

"물론 단발성이라 한번 하고 끝이라 아쉽긴 해. 헤헤헤헤."

"하하하하. 대단해!"


작년에 국비지원 교육을 받았던 아내는 뜻하지 않게 1회성 강의를 하게 됐다. 나날이 발전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더더욱 안전하게 집구석 백수짓을 할 수 있겠어.'


나도 몰랐던 내 꿈을 하나 이뤘다.


[셔터맨].


물론 약국이나 가게는 아니니까 다른 표현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꿀(?)을 빨아 마시는 중이다.


"정신 차려. 내 소원이 뭔지 알아?"

"... (말하지 않아도 알아.)"

"으휴, 월 100만 원만 좀 벌어오라고!"

"..."


월 천도 아닌 월 백! 단돈 백만 원!


아르바이트라도 구한다면 근접하게 혹은 그 이상 벌 수 있을 텐데.

아내의 소원 하나 못 들어준다고? 내가?


"하아......"


그런데 왜 이리 동(動)하지가 않지?


-그건 본인이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어서 아입니까?


부정하진 않겠다. 확실히 게으르고 또 게으르다.

이런 내가 과거에 어떻게 직장은 다닐 수 있었던 건지 가끔은 너무 신기하다.


'혹시 내가 과대망상으로 직장을 다녔었다고 착각하는 건가?'


25년도에도 조용히 묻어가듯 지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노선을 변경해야 할 거 같다.

이대로면 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원성(?)을 들을지 모르겠다.


'월 백만 원이면 미션이 그렇게 과하지는 않잖아?'


아무래도 올해는 머릿속에 부유하는 꿈과 현실의 갭을 많이 줄여야 할 듯싶다.




아직까지는 아닌데 아이들이 아빠의 직업을 궁금해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 아이에게 "아빠는 뭐 하시니?"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려나.


"아빠... 집에 있는데요?"

"아하 프리랜서시구나?"

"아마도요? 형 맞아? 아빠 프리랜서야?"

"아니. 그냥 운전기사 아니었어?"


한편으로는 이런 내용의 글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다는 건,

지금의 생활을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박완서 [도둑맞은 가난]


-혹시 이런 상황인 거 아니야? 이거?! 에피소드 쓰려고 일하는 사람 사기 저하 시키는 목적의 글 쓰는 거 아니냐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내 행보가 결코 평범한 40대의 모습이 아니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단호히 얘기할 수 있다.


"결코 그런 목적이 아닙니다. 게다가 부자도 아니에요."


글을 쓰면서도 혹시 모를 [불편함]을 유발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내게는 정말로 노동이 필요한 상황이다.

단지 노동이 글 쓰는 일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혹은 욕심) 너무 큰 상황이랄까.


그냥 조금만 더, 조금만 시간을 벌어보고 싶다.


[Work hard, play hard!]


부디 내게도 적용되는 문장이 되기를.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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