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살아야 해.. 죽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원통하다.’
김시헌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중을 피해 도망간다. 방향도 목적도 잃은 지 오래. 그저 살겠다는 생의 의지만 남아 있다. 어느새 날도 어둑해져 가고 있다. 그나마 밤이 되면 음의 기운이 강해지니 그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편 강병주는 오후가 지나서 집에 도착했다. 설애가 급하게 마중 나온다.
”오라버니. 법주 스님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일이라니?”
홍심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법주 스님의 부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듣는 와중에 병주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의원은 보냈느냐?”
”네. 지금 쯤이면 도착해서 치료 중일 거라 생각됩니다.”
”우리도 빨리 가보자꾸나.”
”네.”
병주의 마음은 급해졌다. 어린 시절 죽을 뻔했던 위기에서 본인과 설애를 구해줬던 법주 스님이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스님. 빨리 가겠습니다.’
칼리의 일격을 받은 김시헌은 영혼의 소실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깨닫는 중이었다. 원하는 모습대로 복구가 안될뿐더러 자신의 모습이 흐릿해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일이다.. 사람의 몸이 필요해.’
다시 예전처럼 강해지려면 수많은 희생을 통해 영혼을 모아야 한다. 그것도 강한 원한을 가진 원귀의 영혼들만. 소멸의 위기 속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인가? 여자면 좋을 텐데.’
상대적으로 영혼을 비집고 들어가기에 편한 여자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김시헌은 긴장 속에 소리 나는 쪽을 응시 중이다.
’둘? 한 명이 여자구나!’
김시헌은 상대를 보지도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이동해서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아!”
”무슨 일이니 설애야?”
머리가 아픈 듯 설애는 잠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병주를 쳐다본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어요. 차갑고 기분 나쁜 느낌의 뭔가가 제 몸을 지나쳐 가는 느낌이..”
”괜찮은 거니?”
이리저리 몸 상태를 살핀 설애는 특별한 이상이 없음을 느끼며 일어난다.
”네. 잠깐 현기증이 났었던 거 같습니다. 죄송해요 오라버니. 빨리 가야 하는데..”
”아니다. 산길이 험해 여자인 네가 고생이구나.”
김시헌은 설애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와 잔뜩 웅크리며 한동안 휴식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다행이다. 훗날을 도모하자.’
산속 동굴 암자로 향하던 홍심은 절에서 들리는 소리들에 법주 스님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신신당부하셨던 스님의 부탁이 떠올라 계속해서 올라가는 중이다. 알 수 없는 괴성과 폭발음 그리고 비명이 합쳐서 들렸다. 그리고 이내 조용해지며 적막이 흐른다.
’설마.. 스님이 잘못되신 건가?’
자신 때문에 스님이 잘못되었을 거라 확신한 홍심은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요동치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신내림을 거부했기 때문이야. 그냥 나만 순리대로 운명을 받아들였으면 모두가 잘 살았을 텐데. 나 같은 건 죽었어야 해. 죄송해요 스님.’
자신의 탓으로 생각이 미치자 홍심은 올라가던 발길을 멈추고 절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설령 스님이 돌아가시고 악귀가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에 비해 수월했다. 다만 요동치는 마음이 잘 진정되지 않아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홍심은 점점 절에 가까워지자 두려움과 무력함을 동시에 느꼈다. 얼마 후 절에 다다랐을 때 마당에 목이 잘린 끔찍한 모습의 법주 스님의 몸을 발견한다. 목이 없어진 모습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홍심은 덜덜 떨리는 몸을 다그치며 스님을 향해 걸어간다.
”스.. 스님. 괘. 괜찮으세요?”
불러도 답이 없다.
’머리는 어디 있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머리로 느껴지는 걸 찾았다. 반쯤 깨어진 모습에 잘린 척추 뼈 끝이 보여 처참했던 전투 상황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스님!”
잔혹한 모습에 기절한 뻔했던 홍심은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으며 스님의 머리를 향해 다가간다. 이미 스님은 숨진 상태였다. 스님의 머리를 품에 안고 홍심은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적막한 산중에 누구 하나 찾아오는 이가 없을 거라 생각하니 막막해진다. 홍심이 한참을 울고 있던 와중에 병주와 설애가 절에 도착한다. 울고 있는 홍심을 발견한 병주는 큰일이 났음을 느꼈다. 홍심의 뒤에 쓰러져 있는 몸이 보인다.
’법주 스님의 옷? 스님이 잘못되셨구나.’
병주는 홍심을 향해 달려간다. 달려오는 소리에 홍심은 울음을 그치고 병주를 쳐다본다. 뒤에 설애도 보이자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