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29

피할 수 없는 일

by 고성프리맨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집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상주로서 많은 분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리저리 도울 일은 없을까 돌아다녀 보지만 딱히 할 일이 없다. 조문객 중에 묘한 기운을 품고 있는 분이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색으로 된 원피스에 모자를 쓰고 왔는데 멀리서부터 시선이 저절로 가는 사람이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되었다.


”이홍심 씨?”


나도 모르는 새에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맞다 꿈에 나온 여자가 확실하다. 여자는 놀라는 나에게 살짝 고개로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조문을 하러 간다. 얼떨결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오래전 사진 뒤 메모에 적힌 홍심이라는 분이 내가 만난 그분이 맞겠다는 생각이다. 조문을 마치고 그분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승호님? 맞죠? 저 이홍심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당혹스러운 느낌에 인사만 건네고 머릿속이 하얘져 버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텐데 오늘 다 나눌 순 없을 거 같아요. 잠깐 얘기할까요?”

”네 그러시죠. 식사하셔야죠?”

”아니요. 잠깐 밖에서 얘기 나눠요. 전 곧 가야 해요.”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마당에 멈춰 섰다. 마당에도 조문객들이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많이 조문하러 왔네요. 병주님은 제 은인이기도 하죠."

”홍심 님? 뭐라고 불러야 할지..”

”편하게 해요. 그냥 지금처럼 홍심 님이 낫겠네요.”

”네. 홍심 님. 어떻게 제 꿈에 나오실 수 있으셨나요?”

”세세하게 말하기엔 좀 그렇고 전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저번처럼 승호님의 꿈에 현신할 수도 있고 퇴마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답니다. 약간의 예지몽도 가능하고요.”

”퇴마요? 무당 뭐 그런 일 하시는 건가요?”

”무당이라.. 신내림은 받지 않았어요. 비슷한 거라 볼 수 있지만 제 능력은 후천적인 노력과 타고난 재질이 합쳐져서 생긴 거랍니다. 승호님은 본인에 대해 아시나요?”

”저요? 그냥 평범한 신학대생?”

”그렇겠죠. 일단 이 목걸이를 받아놔요.”

”이게뭔가요?”

”어느 정도 악귀로부터 몸을 보호해 줄 거예요. 제겐 오래된 소중한 물건인데 승호님에게 넘겨줄 때가 된 거 같네요. 다만 완벽하게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앞으로 승호님의 노력 여하가 중요해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갑자기 나타난 홍심이라는 여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다.


”제가 좀 정리가 안 돼서요. 갑작스럽게 이해해 보려고 노력은 해봤는데 무슨 소린지..”

”지금은 그렇겠지만 결국 다 알게 될 거예요. 승호님은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요.”

”그게 무슨..”

”짧게 더 얘기하자면 전 창훈이에겐 이모가 될 거 같군요. 우리 집안 가족사에 대해서는 좀 알죠?”

”이모님이요? 창훈이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이것도 차차. 암튼 오랫동안 난 김시헌을 없앨 방법을 연구해 왔어요. 하지만 저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답니다. 승호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물론 힘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생기는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아시겠지만 전 아무런 능력이 없어요. 그냥 학생일 뿐이에요. 창훈이도 어떻게 도울 수 있다에 대해선 아무것도 자신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때가 되면 승호님은 선택을 해야 할 거예요. 저도 다 알 수는 없답니다. 다만 우리는 또다시 만남의 순간이 생길 거예요. 그것만큼은 느껴져요. 그럼 가볼게요.”

”저 홍심 님! 알 수 없는 소리만 하시다가 가시면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창훈이는 또 어떻게 되는 거고요? 그리고 창훈이 누나는요?”

”모두를 구할 순 없겠죠. 다시 만나요.”


결국 떠나는 홍심을 붙잡지 못했다. 받은 목걸이를 한동안 지켜보다 목에 걸었다. 알 수 없는 소리, 선택의 순간, 희생 모든 게 불명확하다. 어지럽고 답답하기만 하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물어볼 말이 많았을 텐데. 품 속에 있던 전화가 울린다.


’창훈이?’


”어 창훈아. 정신이 없었어. 음? 창훈아?”


수화기 너머에서 창훈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만 뭔가 끙끙 거리는 듯한 신음 소리 그리고 지글지글하는 듣기 싫은 전자파 소리가 들릴 뿐이다.


”창훈아! 무슨 일이야?”

”악!”


외마디 비명 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다.


”기다려 내가 갈 테니.”


목에 건 목걸이를 한 번 만져 본다. 홍심을 더 붙잡아 놨어야 하는데란 후회가 밀려왔다.


’젠장. 조금만 더 계셨다면..’


막상 창훈이에게 간다 해도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분명 창훈이는 위기 상황일 것이다. 어떻게든 몸이 움직여질 때 일부러 내게 전화를 걸었을 거다. 뒷일은 모르겠다.


”아빠.. 할아버지 장례 중에 죄송한데 저 급하게 친구 집에를 가야겠어요. 친구한테 큰 문제가 생긴 거 같아서 도울 사람이 저 밖에 없어요. 차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친구가?”


아빠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그래. 언제 돌아올 예정이니?”

”최대한 빨리 올게요. 하지만 언제라고는 얘기를 못 드리겠어요.”

”알겠다. 조심해서 다니고. 문제 생기면 아빠한테 꼭 연락해라.”

”네. 미안해요 아빠. 정신없으실 텐데.”

”알았으면 조심히 다녀.”


아빠의 차키를 가지고 문 밖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