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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유용’이라는 말은 내게 칼날 같은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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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기 시작하던 시절, 정직원 전환을 눈앞에 두고도 결국 밀려났었다.
“효율적이지 않아요.”
“성과가 애매한데...”
사람을 숫자로만 평가하던 문구는 해고 통보이자 벽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제 다 왔다. 조금만 버티면 정규직 되고, 대출받고 돈 모아서 집도 장만할 수 있다. 이사 가서 우리 가족도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자.”
철석같이 믿고 말하던 아버지의 얼굴.
행복하게 미소 짓던 엄마.
그러나 그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는 얘기와 함께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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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를 통해 계속 목소리가 들렸다.
“5분 20초는 솔직히 대단한 기록은 아니었다. 그래도 비루한 몸뚱이로 끝까지 버텼다는 사실엔 박수 쳐주지. 솔직히 조금 놀라웠으니까.”
“거슬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슬려? 그럼 네 아버지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무능? 대체자? 부품? 아니면… 낡아 빠진 세대?”
심장이 다시 뛰었다. 그 누구도 아버지 이야기를 쉽게 꺼내선 안 됐다.
“결국 자기 세대의 환상에 널 가둔 거잖아. 정규직? 대출? 내 집? 그 꿈에 너도 목줄처럼 묶여 있을 뿐이라고. 설마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손끝이 떨렸다.
“네 엄마 얘기는 안 할까 했는데…”
낮은 톤으로 조소하듯 웃으며 말을 했다.
“네가 모르는 진실도 있는데 말이지. 알고 싶지 않아?”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언가 끓어올라 제어가 불가능해졌다.
분노가 아니라, 그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가.
“함부로 지껄이지 마! 뭘 안다고 그래!”
“네가 그랬어. 정말로 조금은 유용할 거 같네.”
어둠 속에서 방독면을 쓴 미니미가 대신 대답했다.
“키보드 뒤에 숨어서 쏟아내던 악플 기억 안 나? 팩트 운운 거리던 거 말이야.”
그녀는 묻지도 않은 대답을 이어갔다.
“한현오. 넌 아직 네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를 거야.”
그 한마디에 굳어졌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분노가 뒤섞이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경보음이 울렸다.
뒤이어 문틈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지시사항을 따라 움직이십시오.]
“야. 준비해. 설명할 시간도 안 주고 이것들이 진짜!”
폭발음과 함께 문이 터졌다. 빛이 흘러들고, 매캐한 먼지로 순식간에 뒤덮였다. 게다가 안개탄까지 퍼지며 시야가 희미해졌다.
[시야 확보 모드 온. 집중하십시오. 다음 목표지를 설정 중입니다. 추가로 기술 다운로드를 시작합니다.]
머릿속에 갑자기 이미지가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형, 숫자, 움직임 패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손가락의 움직임, 몸의 균형, 싸우는 동작, 상대 움직임 간파 및 수싸움하기.
‘이게… 무슨 감각이지?’
설명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로봇의 움직임이 새롭게 보였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해! 동작은 떠오르는 느낌에 맞춰서 상대의 움직임을 무력화시키면 돼. 말로는 설명이 어렵고 일단 부딪쳐봐!”
머릿속에 들어온 데이터가 빠르게 몸과 합쳐졌다. 상대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전투 루틴 주입 시작.]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작을 따라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손목을 튕기고, 무게 중심을 바꾸며, 몸을 낮추는 순간, 로봇의 팔이 지나갔다. 머리로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감각과 신체가 동시에 반응했다.
미니미는 옆에서 좀 더 냉정하게 움직였다. 마치 무림의 고수가 그림자를 벗겨내듯, 로봇 하나하나를 무력화시켰다. 데이터와 감각, 그리고 본능이 한데 합쳐지자, 무언가 새로운 힘을 얻은 느낌이었다.
[목적지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지연시켜 주십시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지금까지의 분노와 상처가 모두 전투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