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인연을 믿고 싶었던 김경남 씨 3

by 고성프리맨

학교 끝날 시간에 맞춰 오기는 했는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미쳤어. 왜 온 거야 여길.’


오기 전까진 뭔가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소영이랑 마주칠 걸 생각하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혹시나 애들이 알아보면 부끄러울 거 같아서 후드티에 캡모자까지 쓰고 왔는데 이 정도면 못 알아보겠지.’


종소리가 울리고 하나둘씩 애들이 뛰어나오기 시작한다. 뭐가 그리 급한지 종소리와 동시에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아이도 보인다. 학교를 가지 않는 상태에서 애들을 바라보니 이상한 감정이 든다.


’나도 저랬을까? 한때는 같은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있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이방인처럼 되다니.’


감상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나오는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멀리서 단짝인 안경잽이가 보인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참 못생겼다. 옆에 다른 애와 같이 나오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엄청 웃고 있다.


’내가 없어도 즐겁게 지내겠구나.’


친했던 친구의 옆에 다른 아이가 있는 걸 보니 약간의 질투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 손을 흔들어볼까 하다 민망한 느낌에 그러지 않기로 한다. 안경잽이가 내 쪽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응? 설마 날 알아본 거야?’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피했다.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뭐가 부끄러운데? 왜 이래.’


알아보면 어떡할까 싶어서 더 안절부절못한다.


”경남? 뭐 하냐?”


어느새 다가온 친구가 밑에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아나.. 어떻게 알아본 거지?’


”어? 어.. 그냥. 근데 너 나 어떻게 알아봤냐?”

”아오 병신. 멀리서봐도 그냥 너야. 행동도 어디 덜떨어진 것처럼 이상하게 하고 있고. 숨겨봤자 바로 보인다. 쯧.”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아마 너 아는 애들은 다 알걸? 아! 소영이 보려고 온 거지?”

”아..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보낸 쪽지 보면서 또 엄청 설렜겠구만.”

”하.. 아니라니까.”


’귀신 같이 맞추네.’


”야 저기 소영이다!”

”어?”


나도 모르게 소리치는 쪽으로 쳐다본다.


”이거 봐 어디서 아닌 척이야. 보러 왔으면 보면 되지. 뭐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고?”

”이상한 짓은 무슨. 그냥 왔어. 겸사겸사 학교 올 일도 있고 해서.”

”갑갑하다. 같이 있어줘?”

”됐어. 가 그냥. 그게 도와주는 거야.”

”어버버 거리면서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럼 간다?”

”아 좀 가라고!”

”어.. 진짜 소영이다.”

”하 진짜 작작 좀 해.”

”진짜라니까. 봐봐.”

”이걸 진짜!”


또 장난치나 싶어 화를 내려하고 있는데 어느새 옆에 소영이가 와 있었다.


”어? 뭐야. 소영아 안녕.”

”안녕.”

”아 거봐 진짜 왔다니까. 암튼 난 간다. 데이트 잘하고.”


안경잽이는 놀리듯 얘기하고 뛰어간다.


”아씨 진짜. 빨리 가버려. 미안 소영아. 친구가 장난이 심해서.”

”아냐. 내가 어제 쟤한테 네 번호 물어봤었어.”

”어.. 갑자기 내 번호는 왜? 내가 전화기가 없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우리 잠깐 걸을래?”

”응..”


소영이를 알고 지낸 기간은 길지만 오늘처럼 대화를 많이 나눈 적은 처음이다.


”캐나다 가니까 좋겠다.”

”별생각 없어. 영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걱정이야.”

”잘 적응할 거야.”

”고마워.”

”근데 우리 꽤 오랫동안 봤는데 대화 나눈 적이 없다 그치?”

”그러게. 왜 그랬을까? 하하.”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나 기다렸었는데.”

”응? 뭘?”

”네가 말 걸어주길.”

”내가?”


’이게 무슨 소리지?’


”몰랐나 보네. 내가 너 엄청 많이 쳐다봤었는데. 그때마다 내 눈 피하더라?”

”그랬어? 아니 난. 뭐.”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진다.


'내가 말 걸어주길 기다렸다고? 전혀 몰랐는데.’


”네가 이민 간다고 하니까 갑자기 울컥하더라. 난 아직 말도 한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는데 싶어서. 아니다. 어쩌면 이민 간다고 해서 내가 용기를 내 본 걸지도 몰라.”

”난 몰랐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너하고 친해지고 싶었어. 근데 용기가 안 생기더라고.”

”조금 용기 내보지 그랬어.”


말을 꺼내다가 소영이는 조금 얼굴을 붉혔다.


”뭐 그냥. 가서 잘 지내라고. 인사라도 한번 제대로 하고 싶었거든.”


’소영이도 나랑 친해지고 싶었던 건가?’


”우리 악수라도 할까? 자.”


내 눈앞으로 소영이가 손을 뻗었다. 소영이의 작고 아담한 하얀 손이 보인다. 용기를 내 악수를 해야 하는데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소영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