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국립현대미술관 - 덕수궁

by 상상만두


이번 전시는 규모가 상당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고심을 많이한 흔적이 보입니다.

총 4개의 전시로 이루어진 전시를 2천원에 볼 수 있다는건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최대한 현장을 방문해서 작품을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한국 근대 시인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1917-1945), 이들은 각기 일본과 서울 유학 생활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을 반긴 것은 낯선' 고향이었습니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 앞에서 마음속에 간직했던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고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문인들에게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상실된 정체성이었으며, 이는 도시 근대화, 강제 이주, 민족말살정책 등으로 인해 더욱 짙어진 식민지 시대의 공통된 정서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서는 문학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깊이 새겨졌습니다.

'고향'은 단지 태어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과 마음의 안식처, 나아가 향토와 조국, 이상향 혹은 영원한 그리움의 공간으로 그려졌습니다.


일제식민지에서의 해방, 새로운 국가건설, 이념의 분열과 남북 분단, 그리고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는 이 땅의 풍경화 속에 수많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광복 80년의 대 파노라마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풍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소외된 이들의 마음, 분단의 고착화로 짙어가는 망향의 정서가 담긴 잃어버린 고향'입니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고향'을 주제로 각 시대의 표정이 담긴 한국의 풍경화를 조망합니다. '향토, 애향, '실향, '망향'이라는 네 가지 소주제를 통해 고향의 상실과 재발견, 분단과 전쟁이 낳은 이산, 폐허에서의 생존과 재건의 희망을 되새겨 봅니다.

잊혀진 풍경 속에서 다시금 이 땅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음속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정지용, 『고향』 (1932)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1941)


향수-002.jpg

이상범, (귀로), 1937, 종이에 며, 색, 135x445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이상범(1897-1972)은 서화미술회와 경묵당에서 개화기의 대가 안중식에게 이곽파 계통의 방고풍 산수화를 사사하였으며,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를 통해 사생적 리얼리즘의 산수 풍경화로 관전양식을 개혁하고 정립한 '동양화 1세대'의 대표 화가이다.


<귀로>는 조선미전 동양화부 산수풍경화풍의 중심이 되었던 관전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 들판의 굽은 외길 소로에서 왼쪽 산골 초가집을 향해 소를 몰고 돌아가는 촌부를 점경 인물로 배치하고, 잘게 구획된 전답과 계류, 늦가을 저녁 운무에 감싸인 원경의 산을 구성하였다."잘라 놓은 볏짚을 늘어놓은 것 같다"는 평을 받은 단선 필획을 치밀하게 중첩해 나타낸 향토 경관은 적막감을 자아내고, 화면 상단의 윤무 공간은 산수 자연의 유형함과 목가적 서정성을 더한다.







제1부: 향토(鄕土) - 빼앗긴 땅

Part 1: Homeland - The Stolen Fields


한국 근대미술은 일제강점기 '신흥미술'로 인식되던 서양화의 도입과 함께 본격화되었습니다. 1922년부터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는 수많은 화가들의 등용문이 되었고 이 전람회에 출품된 대다수의 장르는 풍경화였습니다. 이 시기의 풍경화는 주로 일본을 통해 유입된 절충 양식의 인상주의 화풍을 중심으로 일본인 심사위원들의 이국주의(포토호) 취향에 맞추어 '조선색', '향토색'으로 전개됩니다.

즉 식민지로서의 이 땅은 제국주의 일본의 시선에서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향토로 그려지는데, 주로 파란 하늘과 붉은 토양, 물동이를 인 여인과 목동, 원색의 푸른 초목과 강가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삶의 터전으로서 이 땅을 그린 화가들은 우리 자연 고유의 색채와 형태를 관찰하고 주변 일상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결성된 서양화단은 유화나 수채화의 다양한 색채와 붓질로 각 지역의 풍토와 지형을 생생하게 담고자 했습니다. 전통회화의 맥을 이어가던 호남화단은 사생적 태도로 서양화의 구도와 시점을 도입하여 수묵실경산수화의 대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이들이 그린 '향토'는 민족의 정서를 고취시키는 공간이자, 예술적 성취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미술과 달리 문학에서 향토는 이보다 직접적으로 조선독립을 주장하는 감정적 토대로 작용하였습니다. 이상화(1901-1943)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처럼 국가를 상상하는 것이 금지된 조선인들에게 '빼앗긴 땅, 곧 우리의 '향토'는 잃어버린 고향이자 조국으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일깨우는 공간이었습니다.


향수-003.jpg

김주경, <사양>, 1927, 캔버스에 유화 물감, 77x93 cm, 국립현대미술관


김주경(1902-1981)은 충청북도 진천 출신으로, 한국적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미술 비평가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서정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작품 경향을 보였으나, 1935년 경 부터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색채와 빛의 미학에 영향을 받아 현대적인 풍경화로 나아갔다. 그는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한국의 자연과 풍토를 화폭에 담는 한편, 일본 유화풍에서 벗어나기 위해 표현주의적 기법도 활용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하고자 했다. 1927년작 '사양'은 푸른 녹음과 햇빛이 어우러진 자연의 풍경을 안정된 구도로 표현한 김주경의 초기작으로, 김주경 회화 세계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보여준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일본 유학 시절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근대 도시 서울의 새로운 풍경을 담고 있다. 경성부청사와 성공회 성당 등 정동 일대의 전축물이 배경에 자리하며, 건물의 세부 묘사보다는 빛의 시각적 효과와 선명한 색채의 명암 대비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향수-004.jpg

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7, 캔버스에 유화 물감, 97.5x130.5cm, 국립현대미술관



향수-005.jpg

서동진, <우리 집 앞 거리>, 193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31.5x42.5cm, 대구미술관



향수-006.jpg

서동진, <설경>, 192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45.5x61cm, 대구미술관



향수-007.jpg

서동진, <팔레트속의 자화상>, 1930년대, 나무 팔레트에 유화 물감, 17.7x23.5x6.2cm, 국립현대미술관



향수-008.jpg

오지호, <동복산촌>, 1928, 캔버스에 유화 물감, 721x90.Acm, 리움미술관



향수-009.jpg

오지호, <풍경(초추)>, 1948, 캔버스에 유화 물감, 91x72cm, 국립현대미술관



향수-010.jpg

오지호, <무등산록이 보이는 구월풍경>, 1949, 패널에 유화 물감, 24.5x32.5cm, 국립현대미술관



향수-011.jpg

오지호, <흑산도>, 1949, 캔버스에 유화 물감, 38x45cm, 가나문화재단


청량한 바다의 색을 잘 살린듯 합니다. 파도가 넘실걸는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것처럼 보여 좋습니다.



향수-012.jpg

오지호, <조선소 풍경>, 1969, 캔버스에 유화 물감, 37.5x45cm, 국립현대미술관



김수명, <오후거리>, 1939, 종이에 수채 물감, 29x38cm, 대구문화예술회관




향수-014.jpg

박명조, <풍경>, 연도 미상, 패널에 유화 물감, 23.8x33cm, 국립현대미술관


박명조(1906-1969)는 대구 출신으로, 자연과 고향 풍경을 섬세하게 포착한 서정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는 수채화와 유화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표현 방식을 구축했는데, 특히 수채화의 투명성과 유화의 중첩 기법을 융합하여 깊이감 있는 화면을 구현했다. <해경>은 담백한 색조와 정제된 구도로 고향의 조용하고 따뜻한 정서를 담아냈으며, <풍경>에서는 눈 덮인 자연과 전통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고풍스럽고 안정된 구도를 보여준다.

특히 <고향풍경>은 수채화 작품임에도 유화처럼 여러 겹의 색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입체감과 밀도를 더해, 화면에 목직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박명조는 초가집, 기와집 등 한국 전통의 풍경을 자주 그리며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정서를 작품 속에 녹여냈다.



향수-015.jpg

박명조, <해경>, 연도 미상, 종이에 수채 물감, 29x45.5cm, 유족 소장



박명조, <시골길>, 연도 미상, 종이에 수채 물감, 18x56.5cm, 유족 소장


동양화적인 여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호젓한 시골길을 잘 느끼게 해줍니다.

수채화 칠을 더해 중첩된 느낌이 잘 살아나 있습니다.



박명조, <고향풍경>, 연도 미상, 종이에 수채 물감, 26.5x37cm, 유족 소장



향수-018.jpg

권진호, <언덕길>, 연도 미상, 종이(마분지)에 수채 물감, 59x45cm, 유족 소장



향수-019.jpg

오지호, <오월풍경(五月風景)>, 1929, 8호



향수-020.jpg

오지호, <진봉산의 조망(進鳳山의 眺望)>, 1929, 8호



향수-021.jpg

김주경, (숲), 1934, 20호



향수-022.jpg

김주경, <오지호(吳之湖)>, 1937, 20호



정종여, (가야산하), 1941, 종이에 먹, 색; 10폭 병풍, 157x33.5cm(x10) 국립현대미술관



향수-024.JPG
향수-025.JPG
향수-026.JPG
향수-027.JPG
향수-030.JPG
향수-031.JPG
향수-032.JPG
향수-033.JPG
향수-034.JPG
향수-035.JPG

동양화는 꼭 스토리를 풀기위해 조그맣게 건물이나 사람을 그려 넣는다.

이야기를 찾는 즐거움이 있는것 같습니다.


진환, <소>, 1940년대, 종이에 색, 18.3x28cm, 국립현대미술관



김정현, <풍경>, 1940년대, 종이에 먹, 색; 2폭 병풍, 168x94cm(x2), 부국문화재단


은은한 표현이 참 세련되어 보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허백련, 일출이작, 1954, 종이에 먹, 색, 132x116cm, 전남대학교 박물관



허백련, (석문도명), 1939, 비단에 색, 67x39.3cm, 의재미술관


허백련(E0,1891-1977)은 전라남도 진도 출신으로 조선 후기 남종화 대가 소치 허련의 화맥을 이은 화가이다.

일본 고무로 스이운(/호로) 문하에서 화업을 익혔으며, 1930년대 광주 무등산에 정착해 남종화의 부흥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석문도명〉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주제로 한 그럼으로, 이상향 풍경이 허백련 특유의 질박한 필묵과 갈청색조 담채로 돋보인다.


아치형 돌문과 그 아래 굽은 등허리 어부의 형체를 반복해 리듬감 있게 묘사했다. 옛 시문 속 이상향에 남도의 실경을 더한 듯하며, 창작 완숙기인 60세 이후에 사용한 '의도인'관서가 있다.


<일출이작>은 허백련이 전남대 농과대학에 기증할 목적으로 그린 농경도 작품 중 하나이다. 제목처럼 해가 뜨면 일하는 모습을 담아 쟁기질하는 남성과 씨 뿌리는 아낙을 그렸다. 무성한 소나무와 복사꽃 만발한 평화로운 봄 아침 풍경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보여주며, 농업교육과 농촌부홍운동에 대한 화가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21화새나라 새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