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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brant Sep 06. 2021

기숙사인가 신혼집인가?

 누군가가 결혼 생활은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마치 '기숙사'때 같은 느낌이라고.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어떤 표현보다 우리 집의 현재를 정확하게 나타내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일단, 야식을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는 점이 기숙사와 가장 비슷한 모습이다. 배달앱이 보편화된 시기이기도 하고, 집 근처에 인기 있는 가게들이 많기도 하지만, 야식을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있다. 종류도 다양해서 최근에 먹었던 음식만 떠올려보아도 치킨, 피자, 탕수육부터 망고빙수, 카이막 (이집트 디저트)까지 정말 다양한 음식을 야식으로 먹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수 도 있겠지만, 월요일 아침이면 주말 내내 시켜먹은 야식 때문에 기숙사 쓰레기통이 넘쳐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집 분리수거 통도 금방금방 가득 차는데, 이 모습은 기숙사를 생각나게 한다.

여름엔 빙수, 겨울엔 가락국수! 계절감 살려가며 열심히도 먹었다

 행동의 자유로움은 우리 집의 또 다른 특징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는 밤늦게 어디에 나가는 게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도대체 지금 몇 시인데 또 나가느냐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기숙사에서 살던 학부생 때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지낸다. 밤 12시에 무작정 걸으러 나가서 한강에 다녀오기도 하고,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 오기도 하고, 목적지 없이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도 없는 심야시간을 노려 심야 영화를 보러 다녀온 적도 있다. (아쉽지만 심야영화는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 딱 한 번 봤다.) 


 공간의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일부 공간만을 사용한다는 점도 기숙사 때랑 비슷하다. 분명히 기숙사에 책상이 있었지만, 그 책상에 앉아본 날은 많지가 않다. 책을 볼 때도 침대에 앉아있었고, 야식을 먹을 때나 룸메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침대 대신 소파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스마트폰을 하고, 가끔이지만 집에서 일을 할 때에도 노트북을 들고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주말이면 TV를 보다가 소파에 누워 스르륵 잠에 빠지곤 한다.

매장에서는 분명 쿠션이 빵빵했는데, 소파를 너무(?) 애용한 것 같다.


 사소한 것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는 것 또한 기숙사 때랑 닮은 점이다. 밤새 게임을 하던 룸메이트 때문에 잠 못 자서 스트레스를 받아 투덜거리다가도, 룸메가 동아리 선배에게 얻은 기말고사 정보를 나눠주면 그걸로 고마운 마음을 갖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 생활도 비슷하다. 집안일이나, 귀찮은 일을 미루는 서로 때문에 속이 상하다가도, 힘이 들 때나 아플 때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나를 챙겨주는 한 사람 덕분에 힘이 나니까.


 룸메 같은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시작한 이곳, 오늘의 집에 나오는 화사한 신혼집과는 사뭇 다른 마치 기숙사 같은 이곳에서의 몇 년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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