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식혜는 시원하게 먹는 음식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아마 식혜를 가장 많이 드시는 장소는 찜질방(?)이겠죠? 저 역시 빨대가 꽂혀있는 플라스틱 통 속에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식혜나, 마트 냉장고에 들어 있는 노란색 캔음료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한 동안 따듯한 식혜의 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의 첫 번째 식혜는 따듯한 식혜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따듯한 게 아니라 아주 뜨거운 식혜입니다. 어머니께서 커다란 전기밥솥에 직접 만들어주신 식혜였기 때문입니다.
식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겨울마다 어머니께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덕분에 맛있는 음식들을 다양하게 먹어볼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서 어머니의 손맛을 볼 기회도 점점 줄어들다 보니, 한동안은 집에서 만든 식혜를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설에 부모님 댁에서 하루를 보내며, 오랜만에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었던 뜨거운 식혜를 다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보다 더 놀란 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뜨거운 식혜를 맛본 아내였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식혜? 윽!"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입을 먹어본 후에는 정말 달고 맛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한 상태에서도 달콤함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상온에서는 훨씬 더 달게 느껴지도록 설탕을 듬뿍 넣어야만 하니까요.
겨울이라는 계절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름이었다거나, 여름이나 다름없는 뜨거운 찜질방에서는 차가운 식혜가 제격일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엉따를 켜도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시댁에 온 며느리에게 따듯한 식혜를 한 대접 주셨던 시아버지가 아주 좋은 타이밍에 그 맛을 보게 해 주신 것 같기도 합니다. 집으로 올 때 여러 가지 음식들을 싸주셨는데, 식혜도 한 통 싸주셨습니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서도 따듯한 식혜를 먹고 싶다고 해서, 어렸을 때의 기억을 살려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데워주었습니다. 저는 보통 전을 데우기 귀찮을 때 따듯한 식혜를 함께 먹었었는데, 맛잘알인 아내는 차갑게 먹는 음식인 도토리묵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저희도 한 번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음식이 없더라도, 추운 겨울날 차 한잔을 대신해 드시면 따듯함과 달콤함을 함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에 따듯한 식혜 한 대접 드셔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