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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U Sep 24. 2019

DVD방에 안어울리는 뜬금 고뇌

영화 리뷰



내가 좋아하는 장소, DVD방


지난주 토요일, 애인과 함께 서울역 DVD방을 갔다. 종종 DVD방을 찾는다. 넓은 스크린,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그 침침한 느낌을 난 좋아한다. DVD방은 컴컴이란 단어보단 침침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뭔가 침침이란 단어는 눈을 껌벅껌벅거리며 빛이 약하게 들어오는 공간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난 어느 정도의 친밀도가 형성된 사람에게 DVD방을 추천한다. 물론 해당 공간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다. 그저 영화를 보기만 하는 곳인데. 그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께름직하다거나 이상하거나.



‘2 days in paris’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


로맨틱 코미디 쪽을 살펴보다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여주인공은 비포 시리즈의 줄리 델피?!


끌리는 제목. 끌리는 배우. 이 영화를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제목에서부터 여행지에서 처음 만나는 두 남녀의 모습이 상상됐고, 각각 다른 두 남녀의 생각이 서로 교집합이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여행 뽕이 남아있나? 난 이미 CD를 들고 카운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영화 상영 10분 후


어라?


영화는 처음 상상했던 스토리와 완전 다르게 전개됐다. 여행지에서의 가슴 떨리는 사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시작부터 2년간의 연애로 서로에게 이미 너무나도 익숙해진 두 남녀의 이야기. 한 편의 연애 다큐를 보는 듯한 리얼한 구성이었다.

전개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불만쟁이 미국인 남친과 욱하는 성격을 가진 프랑스인 여친의 2일을 그린 영화다.

처음에는 문화가 틀리고, 언어가 틀려 저리 싸우나 하고 봤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저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비단 문화와 언어의 다름으로 인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배려와 이해가 빠진 사랑


해당 영화 속 남녀는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가 수치스러워할 수 있는 모습들을 가족들과 공유하고 이전 연인들과의 오해할법한 모습도 남자 앞에서 서슴없이 보인다. 남자 또한 여자의 문화를 계속 무시하고 야만적이라 생각한다. 그가 직접적으로 여자에게 해당 사항에 대해 따지진 않았지만 모든 행동 말투 표정에서 경멸이 느껴진다. 이 둘의 문제는 나라와 문화가 달라서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도 연애 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배려와 이해라고 했다. 배려 없는 사랑을 하게 되면 국적, 살아온 환경, 취향 모든 것이 같더라도 외계인과 사귀는 것처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했다. 그만큼 사랑에는 의식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 옆에 있던 애인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고는 순간 두려운 생각이 감돌았다.


우리의 관계가 오래되버려 배려와 이해없이 싸우기만 하면 어쩌지?


나조차 보기 싫은 부분을 너가 이해해줄까? 나의 그런 모습을 보면 너는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너무 별로라 생각하려나? 지금 너는 나의 모든 모습이 좋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면 안 좋은 모습을 다 보고 나면 결국 헤어지고 싶어지겠지?


혀끝까지 질문을 내뱉었다가

쪼잔해 보일까 허겁지겁 다시 먹었다.

수십 가지의 질문을 모두 혼자 먹었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했다.


그의 배려와 이해가 오래도록 유지되길. 그가 부족한 사람이듯이 나 또한 부족할 수 있단 것을 알기를.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름을 알기를.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라도 시간이 지나더라도 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지속해야겠지..


영화가 끝나고 우린 DVD방을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애인은 재밌었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내가 영화보는 내내 이런 복잡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까? 그날따라 그의 미소가 더 어려보였다.






요즘 생산적인 일에 질려 비생산적인 일로 잠시 갈아탄 마케터의 픽션,논픽션 짬뽕 수필입니다.


부족하니 가볍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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