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로봇의 엄마
20190606
엄마가 꿈을 안 좋은 걸 꿨어
그러니까 오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
조심할 거지?
기도하고 또 기도해
포르투갈로 넘어가갈 예정이었던 당일 새벽, 엄마에게 온 카톡이다. 저 텍스트 말고도 여러 통의 보이스톡도 와있었다. 그녀는 참 걱정이 많은 여자다. 유독 자신의 딸들에게만. 자신의 중대한 미래를 결정할 때는 며칠 만에 뚝딱 정하면서 딸들의 일에는 더 고민하고 더 걱정한다. 난 자주 그것에 대해 나무라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네가 딸 낳아봐야 내 마음을 알지.’라고 말했다.
이번 나의 여행도 그녀의 걱정이었고, 그녀는 내가 떠나기 전부터 걱정로봇이었다. 걱정인형은 걱정을 대신해주지만 걱정로봇은 걱정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뿐이었다. 첫째 딸이 유럽을 혼자 가는 건 처음이어서 그랬나? 경유를 해서 그랬나? 그녀는 내가 아프리카 오지로 가는 것처럼 걱정했다.
걱정로봇은 걱정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내가 스페인에 있는 동안, 그녀는 하루에 한 번꼴로 나에게 연락했다. 매일 ‘잘 지내지? 별일 없고?’라는 카톡이 왔고, 나는 ‘응응’이라고 할 뿐이었다.
솔직히 이런 연락이 부담스럽고, 싫다. 좋게 생각하더라도 나를 못 믿어서 이러는 것이라고만 생각이 되었고, 차후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갈 때도 이렇게 연락이 올까 걱정되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난 자립심이 강한 사람인데 마마걸로 보일 것이 아닌가.)
그러던 중, 내가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당일 새벽, 나에게 저런 문자가 온 것이다.
아니, 꿈을 안 좋은 것을 꿨다니. 안 좋은 것을 꿨으면 엄마의 다른 일들을 걱정해야지 왜 내 여행이 그 악몽의 결과물일 거란 생각을 하는가.
사실 반복적인 이런 맨트는 내 기준에서 ‘걱정’을 둔갑한 상대에 대한 ‘믿음 부족’이다. 상대방이 잘 되길 어느 정도는 믿어야 하는데 전혀 못 믿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걱정’이란 것도 있지만 ‘믿음’이란 것도 있다. 네가 하는 결정이 언제나 좋은 것이고 잘될 것이라는 믿음. 온전히 나를 믿어주는 믿음. 걱정을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부담을 안겨주지 않을 선에서만 하는 그 절제.
물론 가족이라 그 절제가 안될 수 있지만 가족이면 더 믿어줘야 한다. 설령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잘 헤쳐나갈 것을 믿어줘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불가능하다라 말해도 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여행 중 강도에게 돈과 여권을 다 털리는 일을 겪었다 치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걱정도 필요하지만 내가 그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응원해줘야 한다. 다른 모든 이가 저건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감사와 긍정으로 나를 응원해줘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을 잘 몰랐다. 그리고 그녀의 걱정은 온전히 나에게 퍼부어졌다. 그저 걱정만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도움도 안 되는데도 말이다.
-계속-
살면서 한 번쯤은 비행기 놓칠 수 있잖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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