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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U Jun 09. 2019

살면서 한 번쯤은 비행기 놓칠 수 있잖아?(3)

마법의 주문, 그라 띠 아스

20190606

일본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스미마센’이다. 그들은 지하철에서 자신의 발에 밟혀도 ‘스미마센’이라고 하는데, 내 발이 네가 밟게끔 거기 있었던 것이 미안하단 의미이다.

 ‘스미마센’은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어떨까? 내가 7일간 경험한 스페인 사람들은 ‘그라 띠아스’(감사합니다의 스페인어)를 많이 쓰는 민족이다. 보통 감사는 여유에서 비롯되는데, 이들의 여유는 풍족해서라기 보단 민족적인 성향인듯하다. 작은 일에도 축배를 들고, 축제가 끊이지 않는 이 나라는 삶을 즐기는 여유를 알고 있었다. 마치 축배를 들기 위해 감사할 일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와 Jen도 스페인 사람들에게 물든 걸까? 우리 또한 여행 내내 그라 띠아스를 외치고 다녔다.

음식이 맛있으면 그라 띠아스!
날씨가 따뜻하면 그라 띠아스! 추워도 그라 띠아스!
아름다운 자연을 보아도 그라 띠아스!
모든 것이 감사할 일 투성이었다.

비행기를 놓치고 나와 Jen은 이제 어찌할지 고민했다. 당일 포르토행 비행기는 밤 11시 출발인 것 밖에 안 남았는데, 나는 다음날 오후 4시 포르토-마드리드행 비행기를 예매해놨었기에 밤 12시에 포르토에 가면 포르토를 관광할 시간이 4시간밖에 안됐다. 나는 바로 마드리드로 가는 편이 적절했다.

Jen은 어차피 다음 주 목요일까지 유럽에 남아있을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밤 비행기로라도 포르토에 가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다른 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난 오후 4시 15분 마드리드행 비행기, Jen은 밤 11시 포르토행 비행기.

우린 공항에서 급하게 당일 숙소 예약, 비행기 예매, 택시 예약 등을 1-2시간 정도 진행하였고, 낮 12시가 되어서야 첫 끼니를 먹을 수 있었다.

공항 지하 1층의 레스토랑에서 파스타, 초밥, 귀리 샐러드, 석류주스를 주문했다. 아침, 점심 모두 쫄쫄 굶고 먹은 첫끼니. 메인 요리 3가지 모두 맛이 형편없었다. 구글 에 별점 1점을 주고 아주 상세한 후기를 쓰고 싶을 정도 맛이 없었다. 유일하게 먹을 만한 건 석류주스뿐이었다.

‘여기 석류 맛집이네’

Jen이 말했다. 요리가 다 맛없단 말이다. 우린 둘 다 크게 웃었다. 지금쯤 포르투갈에서 문어요리를 먹고 있어야 할 우리가 바르셀로나 공항 지하 1층의 식당에서 가장 맛없는 요리 3개를 먹고 있다니 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우리 참 다행이란 말이지. 바르셀로나가 그렇게 소매치기 천국이잖아. 그런데 우린 여권도 안 잃어버리고, 돈도 안 잃어버렸어. 또, 만일 그 직원이 실수로 짐을 비행기로 보냈는데 우리를 비행기에 안태워줬으면 어쩔뻔했니! 이것 참 그라 띠아스네.’

‘그렇네! 그라 띠아스네!’

둘 다 이 상황이 너무 재밌어서 웃기만 했다. 또, 이런 상황에 ‘그라 띠아스’를 외치며 나와 맞장구쳐주는 친구와 함께 한 것 또한 감사했다.

여행도 인생도 항상 생각대로 될 순 없다. 완벽히 자신이 계획한 대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원하지 않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는 정말 중요하다.

당신이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어떤 최악의 상황에도 농담을 하며 웃을 수 있다. 난 포르토 대신 마드리드로 간 덕에 스페인 3대 미술관 중 2곳을 보게 되었고 15세기~21세기 작품들을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면 이 귀한 작품들을 30대가 지나서야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놓친 에피소드 덕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나?


만일 나중에 당신에게도 내가 비행기를 놓친 급의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면 일단 그라 띠아스를 외치고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해리포터보다 강력한 마법의 주문이니 말이다.
그라 띠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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