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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Aug 08. 2020

인생의 고비를 넘어서려면

나만 아는 숨 막히는 순간에 이르렀을 때

폐소 공포증이라는 증상이 있다. 닫히거나 막힌 공간에 들어서면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발작하거나 졸도까지 하게 되는 심리 질환의 일종이다. 이를테면 몸만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좁은 동굴 속을 통과할 때 느껴지는 압박감과 비슷하다. 이런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협소한 공간에서 일반인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아 장애가 생긴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학습만화에서 알게 된 내용이다. 그런 증상과 똑같지는 않지만 심리적인 면에서 적잖게 공감할 수 있었다. 요즘 인생에서 가장 빡빡하고 답답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은 온라인 사업을 시작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은 온라인 마켓에서 물건 파는 일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 다녔던 회사에서 주력으로 담당하던 직무를 개인 사업으로 하려는 것이다. 일단 기술적인 부분에서 적성이 맞고, 그간의 경험을 돌아볼 때 나름의 학습 역량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회사를 그만둔 시점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맞벌이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결국 사업의 길을 택했다. '5년 안에 준비해서 독립해야지' 정도로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막상 한 걸음을 떼어 보니 막막해졌다.


회사 밖에서 혼자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가족이 낯설어하는 중소기업에 다녔을지라도 그 울타리가 없어지는 순간 허전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혼자 해야 한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했던 터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기댈 곳이 없어진 느낌이 편하지 않았다. 이전처럼 어떤 일에든 선뜻 자금을 써가며 투자하기 어려운 게 가장 아쉽다. 본부장일 때 전결로 사용하던 예산은 자연인에게 남의 얘기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실험하자는 생각으로 자본 없이 시도 중이니 빠듯할 수밖에.


게다가 평소 관심이 많던 다른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 지난 경력과 별 상관이 없는 건강 카테고리다. 첩첩산중이다. 업무적인 기술만 알 뿐, 업계 정보는 모른다. 내 행보에 따른 시장의 반응에 대해 예상하지만 그 예상이 맞을지, 또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판매하는 '플레이어'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장에 들어섰으니 어리바리한 게 당연하다. 잘 아는 사람이 보면 무식하게 도전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이런 조건에서 일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이르렀다.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은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비영리 단체의 창립 멤버로서 일했던 시절, 쳇바퀴 같은 언론고시 수험생의 일상에 매몰돼 살았던 시간, 전임자가 실패했던 아이템을 팔아 팀을 꾸려야 했던 순간 등 여러 추억이 휙 떠오른다. 나대지에서 삽 들고 혼자 땅을 파듯 여러 차례 토대를 만들었다. 사무실 책상을 고르는 것부터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 후임에게 물려주기까지, 소소한 경험이 그나마 밑천이다. 새로운 일을 개척하고 자리 잡는 일련의 과정이 몸에 베니 완전히 다른 일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두렵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 게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에 절로 긴장감이 올라가고 온몸이 뻣뻣해진다. 모처럼 찾아온 인생의 오르막이다. 처음 느끼는 게 아니라서 오르막에 서 있는 것 자체는 무섭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모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때 문득 한 문장이 생각났다. '땅에 눈이 쌓이려면 오래 내려야 한다'라는 말이다. 이제 겨우 두세 번 내렸을 뿐인데.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조금이라도 빨리 성취하고 싶은 바람 탓에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질 않았다.


스스로를 가뒀던 상자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는 가족에 대한 신경, 일상의 절반 가까이를 육아에 쓰면서 조급해진 마음, 그럴싸해진 뭔가를 주변에 알려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부터 시선을 뗐다. 그러고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는 오늘의 과업 한 가지를 찾고 실천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기록했다. 언젠가 또 다른 언덕을 넘어갈 때 지금 이 순간을 돌파한 기억을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일에는 정답도 풀이도 없으니, 옳게 여긴 방향으로 일단 해보며 계속 돌아볼 요량이다.


저 같은 사람은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
머리로 수없이 분석하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택한 어떤 것도
안전하거나 확실치 않은 것을 알고부터,
옳은 방향을 찾기보다
옳다고 여긴 대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만약 틀리다면, 그때 바꾸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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