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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May 18. 2020

삶이 지쳤을 때 다시 일어서는 요령

뭘 하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눕는다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단번에 느낄 때가 있다. 오만상을 찌푸린 순간이다. 몸은 물론 마음이 힘겨울 때 얼굴이 구겨진다. 마치 무거운 짐을 들거나, 어딘가에 고정돼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줄로 끌어당기거나, 어딘가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용을 쓰는 모양새다.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뭔가를 견딘다고 느낄 때 얼굴에 드러난다. 이럴 때 종종 정신을 차리고자 커피나 각성제를 마시면서 내 몸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고비만 지나면 곧 맥이 빠지는 것을 경험한다. 삶이 유독 버겁게 여겨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내 시간의 대부분을 잠식할 때 사는 것이 피로했다. '육아빠'의 삶이 그랬다. 휴가와 휴일이 곧 육아와 살림이었다. 몇 년 전 맞벌이를 시작하며 이런 일상의 무게가 확 늘었다. 그전까지는 아이가 어린 탓에 아내의 주도권이 컸다. 퇴근하고 나서야 거기에 합류하는 모양새가 많았다. 물론 남녀가 함께 책임질 일상에 최선을 다해 내 몫을 감당했다. 그러나 맞벌이 이후와 비교하면 덜 무거운 시간이었다고 회고된다. 아내와 함께 바깥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돌아보고 살펴야 할 집안일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초라해 보였다. 주말이면 주중에 미뤘던 아이들과의 놀이는 물론 요리, 청소, 빨래, 정돈, 가족 행사를 거쳐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흘러갈 때가 다반사였다. 너무 피곤해 기절할 때를 제외하면, 그런 식으로 살다가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여기에 때때로 피로하고 예민해진 아내가 외따로 시간을 보낼 때면 그럴 틈조차 없는 나는 때로 감옥에 갇힌 듯했다.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린 사람처럼, 기꺼이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사는 듯 느꼈다. 이는 사실 내 마음 탓이었다.


마음이 좋을 때는 힘든 것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을 때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흔쾌히 해낼 수 있었다. 주변의 반응에 요동하지 않았다. 마음을 넉넉하게 쓰고 포용할 수 있었다. 반면 이따금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없을 것처럼 맥이 빠질 때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기운이 없을 만큼 애썼고 더 힘을 내지 못할 만큼 다했다고 여겼다. 그때 잠시 몸과 마음을 세웠다. 거센 물살에 미동도 하지 않는 물속 바위처럼, 허리 높이까지 웃자란 풀들 사이에 곧게 뻗은 나무처럼 눈을 감고 섰다. 내 마음을 분명히 응시하기 위해서다.


내가 나를 살피는 시간이 필요함을 알았다. 몸이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받아서다. 그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대체로 가만히 쉬고 나면 영점 조준을 할 수 있었다. 어디서 마음이 넘어졌는지 살폈다. 가까운 사람의 메마르고 날카로운 말,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이 대부분이었다. 격려나 칭찬을 받고 싶을 때 그렇지 못했고, 배려심 없고 일방적인 태도에 실망감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언제 어디서든 조건만 맞으면 선택할 수 있는 본능이었다. 새롭지 않을뿐더러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를 끌어안고 일으키기로 했다. 그렇게 힘 없이 있고 싶지 않아도 달리 반응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인정했다. 기력이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넘어진 자리를 다르게 바라볼 수 없을지 부드럽게 물었다. 마치 친구처럼.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를 눈물짓게 한 그 사람을 웃을 수 있게 만든다면 네가 가질 기쁨은 얼마나 더 클까. 그런 식으로 마음의 발꿈치를 떼기 시작할 때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는 힘이 결국 큰 것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덕분이 아닐까 싶다.


좀 지치는 날이 찾아오면
인생의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섭니다.
그때가 저를 돌아볼 시간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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