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마주할 때
살다 보면 죄책감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내가 했던 잘못에 대한 후회감이다. 그 느낌은 실수의 크기나 의도와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정말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마음 속에 남겨진 과실의 잔해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을 볼 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슬픔, 공허함, 황량함, 무기력감 등이 남 모르게 가슴을 누른다. 다시 찾아온 일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몸에 묻은 향수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듯 마음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감상은 서서히 지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그 순간이 기억날 것이다.
난데 없이 불 같은 화를 낸 이후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분노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어떤 상황과 조건이 되면 마음에 불길이 번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분한 마음이 온 몸을 태울 것처럼 일어나는 통에 종종걸음으로 성을 내던 내 모습을 마주할 때 크게 충격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그나마 화를 내 본 경험은 10대 사춘기 때였다.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행동에 반항적으로 대든 적이 한 번 있었다. 덕분에 엄청 혼났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제대로 화를 내본 적이 별로 없다. 목사와 교사의 자녀로 자라면서, 교회와 학교에서 성실하고 착실한 이미지로 자랐다. 장난기가 좀 많고 말이 많은 정도가 특징이랄까. 구김살 없이 어울리다 보니 여러 사람과 쉽게 사귀며 평범하게 지냈다. 오죽 했으면 지난 회사에서 팀원으로 일하던 분이 '팀장님은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렇다고 화난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타인에게 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좀처럼 없긴 했다. 그저 말로 상대방을 비꼬거나 별 일 아니라는 듯 흘려버렸다.
그런데 불편한 마음이 쌓여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하듯 행동했다. 이런 것이 뒤끝일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름대로는 분노의 이유가 있었다. 매번 상황이 생길 때 풀면 좋을 텐데 대부분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상황이 반전돼 분위기가 좋아지면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었다. 그러니 쉽게 화를 안 냈다. 그러나 자주 부딪히는 사람이 생기니 이렇게 하기 쉽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거나 공격한다고 느껴지는 일이 모여 도를 넘었다고 느끼면 분노를 토해냈다. 그리고 후회했다. 폭풍이 휩쓸고 간 마음의 자리에 나에 대한 실망감만 남았다.
나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무리 탑을 공들여 잘 쌓아도 작은 균열로 무너진다면 애초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것이 가장 쉬운 선택이지만 동시에 제일 어리석었다. 자신을 포기해서 얻는 결과는 그 어떤 작은 것도 긍정적이지 않은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문득 귓가에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다.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마음이다.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데 선뜻 일어나지 못했다. 기왕이면 무엇을 선택할지 자문했다.
마음에 드리운 그늘을 떠나고자 애써서 용기를 움켜쥐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봐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어떤 행동이 옳은지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은 자기기만이었다. 생각이 이쯤 이르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엉덩이를 털 수 있었다. 마음이 주저앉은 자리에서 눈길을 돌려 가야 할 방향을 응시했다. '혹시 또 넘어지면 어쩌지'란 생각에 서 있는 내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지금의 나란 사실을 바꿀 수 없기에 받아들였다. 다음에는 지금과 좀 달라질 것이라 마음 먹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해 실망했던 그 자리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지점이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