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에 대한 물음
잘 사는 것 같다가 갑자기 힘 빠지는 순간이 있다. 머릿속에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란 생각이 스친다. 이를테면 나는 최근에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19로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못 가는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는 중이었다. 조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지만,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챙기는 일은 끝이 없다. 뭘 먹고, 공부하며, 놀 것인지를 고민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조로워지고 있다. 게다가 청소, 빨래, 정리 등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간다. 뭔가를 견디는 듯하다.
내가 선택한 일 때문에 지치고 있음을 감지한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라고 혼잣말을 하며 몸을 풀지만 쌓여 있는 과업은 막막하기만 하다. 내 앞에 펼쳐진 일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에 허덕이다가 힘이 빠져 기진맥진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만 애쓰는 것 같다고 정당함을 주장하며 아내를 공격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 인생에 주어진 숙제를 혼자 풀지 못하는 느낌에 집중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돌아봤다. 어째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고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늘 그렇듯 어떤 결과를 바라면서 인생의 선택을 해왔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오래전부터 나의 소원이었다. 연애하기 전에는 꼭 맞는 짝을 위해,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귀엽고 건강한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이뤄졌다. 그런데 이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화목한 가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답게 지내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그 이면에 수고해야 할 일과 책임은 가볍게 본 셈이다. 그것은 선택의 일부가 아닌 전체였다.
이것을 지켜내는 과정 속에 나의 정체성이 엿보인다. 남편이자 아빠의 이름은 그저 주어졌지만 그에 걸맞게 변해가는 중이다. 글씨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듯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듯, 내게 주어진 역할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심지어 그 소임에 대한 시야와 태도마저 달라졌다.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잠시 상상해보지만 별로 와 닿지 않는다. 그때는 제 나름의 모습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택한 것으로 인해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것이다. 지금은 내가 바라던 삶으로 가는 길 어디쯤일 것이다.
이 와중에 변하지 않는 내면의 보석을 찾는다. 과거 인생길에서 어둑했던 곳을 비춰주었던 등불 같은 무언가다. 넘어질 것 같고 치우칠 것 같았던 삶의 고비에서 다시 균형을 잡고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게는 '사랑'이었다. 연인 간의 로맨스가 아니라 나를 향해 베풀어준 일방적인 호의를 의미한다. 조물주는 물론 부모, 동생, 친구, 선생님, 옆집 아줌마, 경비원 아저씨, 우연히 만난 사람, 심지어 딛고 서 있는 땅과 제대로 잘 뛰고 있는 심장으로부터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온정과 배려를 인지할 때 내 마음이 새로워졌다.
그 덕분에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알았다. 지금의 내가 남편과 아빠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걸맞게 자라는 과정은 내 힘만으로 해낸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관점도 갖게 됐다. 의존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누군가가 의존할 수 있는 내가 '진짜 나'였다. 영향을 받기만 한 것 같으나 언제부턴가 영향을 주고 있는 존재로 변한 것이다. 내 생애 동안 또 지치는 순간을 만나겠지만,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보이는 내가 그 길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상황과 환경에 지치고 힘들 때
그것에 영향받는 제가 낯설 때
그 선택을 지키며 걸음을 내딛는
진짜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