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을 때
늘 그렇지는 않은데 마음이 몹시 어수선할 때가 있다. 뭔가를 새로 하거나 맡게 됐을 때 종종 찾아온다. 어떤 일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늘 하는 일은 아니라서 적지 않게 신경 쓰게 된다. 그런 일들이 모양을 달리해서 한 번에 찾아오면 괜히 마음이 더 바쁘다. 이를테면 주말에 모처럼 날씨가 좋아 나들이하기 좋은 날인데, 점심에 선약이 있고 이미 시간을 여러 번 미룬 터라 바꿀 수 없다. 같은 날 저녁에 축하할 일로 친척과 저녁식사를 해야 해서, 미리 선물을 준비해 아내,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한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일정은 물론 관계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가볍지 않다. 일단 아내의 심기가 불편할 수 있다.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는 데다 저녁 일정에 맞춰 아이들을 준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전에 준비할 선물은 무엇을 할지, 누가 어디서 어느 정도 가격대로 사야 할지, 다음 동선에 맞춰 어떻게 움직일지를 정해야 한다. 대화를 나누다 뭔가 마음이 틀어지는 거리라도 생기면 모든 것이 꼬이게 된다. 빈틈없이 계획적으로 진행하려는 남편과 공감하며 함께 하길 원하는 아내 사이에서 벌어질 법한 사고다. 나도 종종 이런 식으로 일을 그르쳤다.
무엇이 내 마음을 널뛰기하게 만드는지 살펴야 했다. 일을 잘해보겠다고 시작된 마음이 되레 망쳐버리는 원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일련의 일을 사뿐사뿐 밟아갈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불확실한 것이 많을수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확실한 것을 찾으려 애쓴다. 이것을 계획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임기응변으로라도 대처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이 부산해지면 이런 계획이 오히려 불안감을 만든다. 해야 할 과정이 틀어질까 괜히 두렵다. 불안한 감정이 스멀거린다.
해야 할 일은 번창하는데 그것을 해야 할 나는 쇠약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면서 그 이상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몇 가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그 이상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불현듯 올라오는 것이다. 가급적 다 잘 진행한다면 좋겠지만 내 능력과 여건이 그 순서를 다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내면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선뜻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 그림자가 마음을 덮을 무렵, 횃불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분주한 순간에 정말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힘이었다. 나와 환경에 대해 이성이 웅변한 바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계획을 세울 만큼 세웠지만 그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될 수 있었다.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자신감이 말라버려 그 자리에 책임감만 남을 것 같았다. 이런 상태라면 마블 히어로가 와도 수가 없었다. 이런 나를 그냥 인정했다. 그리고 내면의 조용한 골방으로 잠시 들어갔다. 거기서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철의 갑옷을 벗고 하나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내 마음을 치장한 무겁고 요란한 것을 포기하고 가볍고 단순한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일을 해내는 궁극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다. 지금 나는 능력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했다. 자만하기보다 겸손해야 했다. 큰 것조차 당연히 해내는 우쭐함보다 어떤 작은 것도 감당한 것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감사가 적절했다. 이것이 내가 그 분주함을 뚫고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근원이었다. 내가 바른 것을 선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작은 불을 마음속에서 높이 들어 올릴 때,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이 걷혔다. 열정의 불이 옮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무능해질수록 유능해질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을 해내기로 마음먹은 덕분입니다.
결국 그걸 모아 큰 것을 해낼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좀 덜 분주하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