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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whale May 19. 2020

마음에 남는 인상을 주려면

좀 특별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스팸일까 싶어 받지 않았다. 010 번호로 한참 울리다가 꺼졌는데 혹시나 싶어 다시 걸었다. 모르는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혹시 000 씨 되세요?", "네, 기록이 남아 전화했습니다. 어떻게 전화 주셨지요?", "저 예전에 00 샀던 000입니다." 과거에 나와 통화했던 고객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개인 번호로 문자 보냈던 것을 저장해둔 분이셨다. 나를 통해 구매했던 제품을 더 사고 싶다고 해서 이전 회사의 안내팀을 연결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내 이름을 부르며 자주 전화했던 고객이 떠올랐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한 사장님은 자주 전화를 주셨다. 어림잡아도 20번은 족히 넘게 통화했던 것 같다. 4년여 동안 한 영역을 담당하다 보니 그랬다. 설치 장소에 필요한 CCTV를 설치한 후 이용하는 것에 관한 문의였다. 간편 매뉴얼이 잘 이해가 안 된다며 물으셨다. 기술적인 설명을 어려워하는 분이 종종 있다. 그래서 평소처럼 중요한 것을 짚어 안내해 드렸는데 그 이후 전화가 잦아졌다. 좋은 감명을 받으셨는지 함께 운영 중인 원룸에 필요한 설비도 추가로 구매하셨다. 이름을 꼬박꼬박 부르시며 좋아하셔서 안내하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후 1년여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무작정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예전에 그 사장님이었다. 불현듯 그분 성함이 떠올라 함자를 부르며 맞는지 확인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흥분하셨다. 전화의 요지는 또 다른 가게를 열어 설비를 옮겼는데 이전처럼 안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전처럼 자세히 안내드려 해결했다. 그 사이 사업이 번창하셨다는 둥, 직원을 새로 뽑았다는 둥 대화가 오갔다. 그분은 아들이 군대를 갔다는 얘기까지 하신 후에 새로 필요하다며 제품을 더 구매하셨다.


나의 무언가가 그분 마음에 남은 듯싶었다.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데도 필요한 것을 묻고 기꺼이 구매하셨다. 사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 그 분과의 대화는 가볍고 편했다. 내 이름을 부르시며 매번 편하게 전화해 좋다고 하신 말이 유독 귀에 남았다. 옆 집 친구 집에 들러 시시콜콜 묻는 느낌이라 그러셨을까.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그분 입장에서 낫다고 여겨지면 구매를 만류한 적도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제품의 장단점을 명확히 알기에 넘치지 않고 알맞게 사도록 도와준다는 의도로 말씀드렸을 뿐이다.


내가 그분을 기억하면서부터 나를 대하는 행동이 적극적으로 바뀌셨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고객 중 한 분이었다. 평소처럼 정확하게, 과도하지 않은 태도로 응대했다. 그런데 내가 그 분과의 대화를 기억하고, 나중에 이름까지 부르며 이야기를 나누는 단계에 이르자 훨씬 더 친근감을 느끼시는 듯 자주 표현하셨다. 제품을 판매한 회사와 통화해 이런저런 필요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약간의 친분 관계까지 쌓인 모양새였다. 업무적인 전화가 뭐 그리 즐거울 수 있었나 싶다. 나중에 지나가다 들러 사주시겠다던 막걸리를 얻어먹지 못해 아쉬웠다.


그 시간에 나눴던 대화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누군가를 기억해주는 것이 얼마나 강렬한 경험인지 새삼 깨닫는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며칠 전 5년여 만에 연락드린 강사님이 날 기억해주셔서 얼마나 반갑던지. 당시 언론사에 합격해 축하해주신 일까지 떠올리셔서 메시지 창에 감동 이모티콘을 연발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나를 기억해주고 함께 나눌 이야기가 있는 사람을 누가 반기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이 들으며 자주 상대방을 주목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따뜻한 추억을 나눌 수 있다면
마음을 나누고 주고받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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