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나는 전설이다(2009)'의 생물학
여름 특집: '좀비의 생물학(Zombiology)'
1화. <부산행> 좀비의 생물학 - 생명공학은 어떻게 또 사고를 쳤나
2화. <나는 전설이다>의 생물학 - 좀비에게도 사회성이 있을까
3화. <나는 전설이다>의 생물학 - 그 '좀비'가 소통하는 법
좀비는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앞선 칼럼에서는, 정보의 생성과 해석, 2단계로 나누어 생각하기로 하였다. 정교한 정보를 생성하고 해석하는 일은 지구의 역사를 막론하고 종과 국가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 '애니그마'를 해석해 낸 튜링 박사와 연합군이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점이나, 로마 최초의 황제였던 카이사르도 카이사르 암호(Caesar cipher)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사실상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복잡하고 정교한 정보를 자유롭게 전달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좀비'의 소통법을 살펴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이 부분을 하나의 칼럼으로 분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뇌 지도를 살펴보며 차근차근 짚어 보자.
영화 속 리더 좀비는 성대로 내는 소리에, 감정과 의미를 포함하여 메시지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 마네킹, 강아지하고만 대화를 하는, 게다가 아무리 말을 해도 강아지에게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주인공(윌 스미스)보다 훌륭한 소통전문가로 보인다.
'브로카 영역'은 표현의 언어가 생성되는 곳으로, 브로카 박사(Pierre Paul Broca)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브로카 영역 바로 뒤쪽에 자리 잡고 있는 Pars triangularis는 언어의 의미를 다루는 데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리더 좀비는 해당 뇌 영역이 퇴화되지 않았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브로카 영역만 멀쩡하다고 해서 종족 전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고유의 의사소통방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보유한 언어를 다루거나, 귀로 들은 언어의 의미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대뇌 뒤쪽에 위치한 '베르니케(Wernicke)' 영역이다. 혼자 3년간 살면서 제한적인 언어만 사용했을 주인공의 뇌에서 기능이 가장 퇴화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한편, 베르니케 영역이 배워서 알고 있는 언어 지식을 활용해 정보를 해석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한 가지 새로운 물음이 생기게 된다.
그 언어는 어디서 배웠으며,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 언어일까?
영화 속에서 리더 좀비와 부하 좀비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보면 상당히 단순한데, '멈춰'와 '공격해' 정도의 의사소통 외에는 몸짓을 통해 의사와 감정을 전달한다. 이러한 묘사로 볼 때 복잡한 문법을 다루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 단순한 수준의 커뮤니케이션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게슈윈드(Geschwind) 영역'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영역은 언어의 습득과 추상적인 표현, 그리고 문법, 어법과 관련된 부분을 담당한다. 게슈윈드 교수는 1960년대에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을 연결하며, 언어 처리과정에 참여하는 뇌의 영역이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게슈윈드 영역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될 뿐, 정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웠다.
2004년, 영국 킹스 대학 정신병연구소의 카타니 박사 연구팀은 뇌에서 언어와 관련된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이 '브로카'영역과 '베르니케'로 알려진 2개의 영역 외에, 또 하나의 영역이 있음을 확산 텐서 MRI(자기공명영상)기술을 이용해 발견했고, 이를 게슈윈드 영역이라 명명했다. 이 영역은 그림에서 inferior parietal lobe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브로카 영역, 베르니케 영역과 거대한 신경다발로 연결되어 있고, 시각과 청각, 촉각과 연결되어 있으며 추상적 사고의 형성에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예로부터 자기와 다른 그룹을 분리시키고, 적으로 간주해 왔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멸종한 도도새, 불과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한 가치관은 영화에도 반영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 속에서 우주인은 지구를 파괴하는 악(惡)으로, 인류는 지구를 지키는 선(善)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인류가 언제까지 이러한 무자비한 충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좀비영화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90%의 인류가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고, 95%의 인류가 좀비가 되어 버린 땅에서 인간은 여전히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고 있다.
좀비 개체를 잡아 약물을 투여하는 생체 실험을 반복해 살해하며 '사람들의 치료'를 주장하지만, 과연 '진짜 병'에 걸린 개체는 누구였을까. 평화를 파괴하고,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남자는 전설이 되었지만, 영화는 여전히 물음을 남긴다.
참고문헌
[1]. Catani, Marco, and Derek K. Jones. "Perisylvian language networks of the human brain." Annals of neurology 57.1 (2005): 8-16.
[2]. University of Minnesota Medical School Duluth, 2015, "Cortical language are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