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곰돌이 Jul 10. 2018

바이러스는 어떻게 좀비를 만들까

28화. 영화 <28일 후(2003)> 의 생물학


'좀비의 생물학(Zombiology)' 특집
1화. <부산행> 좀비의 생물학 - 생명공학은 어떻게 또 사고를 쳤나
2화. <나는 전설이다>의 생물학 - 좀비에게도 사회성이 있을까
3화. <나는 전설이다>의 생물학 - 그 '좀비'의 소통법

4화. <28일 후>의 생물학 - 바이러스는 어떻게 좀비를 만들까


하지 말라는 건, 왜 더 하고 싶을까?

영화를 즐겨 시청하다 보면, 때때로 등장인물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에서 스타로드가 애인의 죽음에 화를 못 이겨 타노스를 각성시키는 바람에, 우주 인구의 절반이 날아가는 정도는 애교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앤트맨이 친구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바람에 FBI 요원들에게 위치가 발각되는 정도의 특급 민폐도 '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르쳐 주실 수 있잖아요. 지구 멸망하게 생겼는데...?

하지만 이 영화 정도라면 조금 다르다. <28일 후> 이야기다. 캠브릿지 영장류 연구소에 잠입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연구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침팬지를 풀어주었다가 첫 번째 좀비가 되는 영광을 누리는가 하면, 집에서 밤늦게 추억놀이를 하다가 이웃집에 살던 좀비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주인공도 있다. '이 영화가 관람객들에게 분노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좀비화(化)의 원인 = 바이러스' 공식이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좀비가 오늘날 영화에서처럼 빠르고, 흉폭하게 서술되는 것도 최근의 흐름이다. 그리고 영화 <28일 후>는 바이러스를 좀비 영화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웰메이드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징그럽고 요란스럽던 좀비에게 제한되어 있던 장르를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갈등으로 발전시켰고, 개봉 이래 15년 동안 수많은 좀비 영화-게임-소설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틀로 자리 잡은 '좀비화(化)의 원인 = 바이러스' 공식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바이러스가 어떻게 좀비를 만드는지 추리해 보기 위해, 영화 속 좀비들의 특징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자.
1. 눈을 보면, 진심이 보인다.

먼저,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의 눈을 보자. 눈동자(동공)가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 눈동자가 작을수록 더 적은 양의 빛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빛 자극에 굉장히 예민하며 어두운 곳에서도 비감염자를 포착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남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전설이다> 좀비의 경우처럼 감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발달한 것일까?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거울 뒤에 숨은 여자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비감염자만 보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등 시각에 비해 다른 감각이나 동종간 소통능력은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앞선 칼럼에서 소통능력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떠올려 본다면, 소통능력이 없는 좀비가 어떤 수준의 뇌를 갖고 있는지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 몸이 불편하십니까

다음으로,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성당 신부님 좀비를 떠올려 보자. 몸이 뻣뻣하고, 제대로 걷지 못할 만큼 심히 삐걱대는 팔다리를 갖고 있다. 반면에 어떤 좀비들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인간일 때 보다 운동신경이 더 향상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신부님이 이미 죽었고, 사후 경직(죽은 이후 근육에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아, 근육이 고정되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가 "살아 있는 대상"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숙주의 죽음은 바이러스에게도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후 경직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바이러스가 신경계를 서서히 교란시킨다는 가설이 좀 더 생각해 볼 만 하다.



3. 좀비를 만든 바이러스

그렇다면, 위의 특징에 부합하는 증상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실재할까? 흥미롭게도, '광견병 바이러스(Rabies virus)'가 가장 비슷하다. 광견병의 원인인 Rabies virus는 급성 뇌질환을 일으키며, 한 번 발병하면 거의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Rabies virus는 신체의 신경 조직을 통해 뇌신경 조직으로 도달한 뒤에, 발병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광견병 바이러스는 표면의 RVG 단백질을 통해 혈관-뇌 장벽(Blood-brain barrier.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뇌를 지키는 역할을 하지만, 광견병 바이러스는 아니다)을 통과할 수 있어 문제가 된다.


뇌 혈관은 신체의 다른 혈관과 달리, 더욱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감염된 환자는 물린 부위에 가려움증이나 열을 느끼고, 병이 진행되면서 불안감, 흥분, 마비, 정신이상 등의 신경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영화 속 인간들이 처음 감염될 때 느꼈던 '감염 부위가 타는 듯한 느낌'과 정신이상 증세와 닮아 있다. 이들은 햇빛(시각적 자극)에 대한 과민 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며, 증상이 나온 후 2~7일 뒤에 전신의 신경이나 근육이 마비를 일으킨다. 마치 신부님 좀비처럼 말이다! 공격적으로 성향이 변하는 것은 덤이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 <Quarantine>에서는 좀비 증상을, 광견병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으로 서술하기도 했다.

Rabies patient.



최근 들어 게임, 영화들은 좀비의 기원에 대해 저마다 흥미로운 해석들을 내놓아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침팬지, 혹은 자연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듯, 인간과 아주 가깝지만 조금 다른 '좀비'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본질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참고문헌>

1. 과학동아, 2007-11, "감정 앗아가는 판데믹 바이러스 인베이전"

2. Ganong, William F., and William Ganong. Review of medical physiology. Norwalk, CT: Appleton & Lange, 1995.


매거진의 이전글 그 '좀비'가 소통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