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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Nov 07. 2018

좀비는 왜 '육식만' 할까

<Plants v.s. Zombies> 의 생물학

채소만 먹고 어떻게 살아?

피곤한 날엔 삼겹살이나 소고기를(네덜란드에선 500그램에 6유로면 충분해요!ㅎㅎ) 먹어줘야 하는 저는, 종종 채식을 고집하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채식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3대 욕망 중 하나는 '식욕'의 절반도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 채소를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관찰하고 싶은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시선을 좀비로 돌려 보면 이런 생각은 조금 달라집니다. 아내와 단잠을 즐기다 말고 좀비가 된 딸아이에게 목덜미를 물어찢기는 영화 <새벽의 저주>의 첫 장면을 보고 있으면 왜 좀비는 들판에 널려 있는 풀을 뜯지 않고 목을 뜯는가,, 하는 원망 섞인 공포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말로 생명과학이 발달해서 인조 박테리아를 만들어내고, 복제인간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된 시대에는 부산행 열차에 좀비가 몸을 싣는 일이 정말로 남일같지 않게 여겨져서 더욱 착잡해집니다.

좀비는 왜 육식만 할까?

좀비는 예로부터 육식동물의 대명사로 회자되어 왔습니다.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좀비는 역시 피맛을 봐야 제격이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육식동물이라고 육식만 하는 것도 아니고, 초식동물이라고 초식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멀리 갈 것 없이 강아지만 보더라도 산책 도중에 잡초를 뜯는 모습을 종종 보게되고(그러다 할머니 텃밭을 쑥대받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초식동물의 경우에도 우골분이나 육골분이 들어간 사료를 먹는 데 거부감이 없습니다. 광우병 파동 때 잘못 알려진 것처럼 '원래 먹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출산 직후의 육식/초식 동물들은 분만 후에 나오는 태반(채소보다는 고기에 가깝겠지요)을 영양 보충을 위해 먹어치웁니다. 당장 좀비가 되기 전의 사람만 하더라도 제 옆에 이렇게 채식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게임 속 좀비들처럼, 언젠가 좀비가 풀을 뜯어먹는 잡식동물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자도 때로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채식: 한다면?

초식좀비의 가장 큰 장점은 굳이 사람의 피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겠지만, 이밖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사람과 생활 환경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시 중심으로 생활환경이 재편되고 있는 인류에 비해, 채식 중심의 좀비는 자연스레 도시 바깥으로 이동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지구의 다른 이웃들, 그리고 좀비에게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육식동물이었으나 오늘날 먹이의 99% 가량을 대나무로 충당하는 '판다'는 초식이 가져오는 변화를 직격으로 맞은 동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매일 12 킬로그램의 대나무를 섭취하는 판다는 단단한 셀룰로오스 섬유 때문에 대나무의 단백질, 지방, 당분 등의 성분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어렵습니다. 육식동물의 소화기관, 치아구조, 유전자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판다는 소와 같은 반추동물처럼 미생물로 가득찬 여러 개의 위로 식물을 여러 번 처리하여 효과적으로 영양분을 추출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하루에 15시간씩 소모해야 하는 엄청난 식성과 중국 당국의 막대한 투자로 겨우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좀비가 초식을 하게 된다면, 시간당 섭취할 수 있는 채소는 한정되어 있지만, 육류에 비해 열량이 낮은 특성상 하루 종일 풀을 뜯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나 판다처럼 체온 유지와 같은 기초대사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차갑게 식은 핏기없는 손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활동성이 많고, 살은 좀 덜 찌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