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부유하는 어느 동양인 유학생 이야기
<스물셋, 네덜란드 세렌디피티_3>
한 번은 술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는 국제 학생들과 다 같이 술 게임을 하는데, 'Never Have I Ever'이라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진실게임 같은 거였다. 질문이 뭐였냐고? '야채로 자위해 본 사람', '자동차에서 섹스해 본 사람', '오늘 아침에도 대마초 빨고 나온 사람', '공공장소에서 섹스해 본 사람', '케미컬 마약(헤로인, 필로폰 등)을 해 본 사람' 같은 거였다. 말하자면 모든 질문이 섹스, 아니면 마약이었다는 거다.
자, 유럽에 도착한 지 일주일 된, 동양적 사고에 익숙한 동양인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처음 만난 유럽인들이 섹스와 마약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내 경우에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곧장 집으로 돌아와 골똘히 고민에 빠졌다. '이성'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서양철학의 발원지에서 어떻게 이렇게나 '본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 밤이면 덤불숲에서 섹스를 즐기는 이들이 이상한 것일까, 아니면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이게 말로만 듣던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 차이인 건지, 네덜란드인들이 말하는 '자유'가 이런 건지,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고민에 대한 답을 구한 것은 며칠이 지난밤 술자리에서 네덜란드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너희들은 덤불숲에서 섹스하는 게 자연스럽니?'라는 질문에 그는 배꼽을 잡으며 '그건 걔네들이 이상한 거야. 우리도 그런 애들이 제발 모텔에 가줬으면 좋겠어.'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때 내가 만났던 '그들'이 좀 독특한 녀석들이었다는 걸, 모든 유럽 사람들이 그들과 같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많은 유럽 국가들이, 그리고 이민자와 난민이 있는 많은 국가들이 이민자 정책으로 '통합(Integration)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고유의 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정착한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고, 차이를 이해하며 융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 다움'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진보적이고, 현대적이고,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네덜란드 다움'의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통합 정책은 이민자 고유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동화(Assimilation) 정책' 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개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유럽인 다운'이야기이다.
그런데 통합 정책은 어렵다. 이민자들에게 특히 어렵다. 어쩌면 이보다도 더 강한 표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통합 정책은 '이민자들과 현지인들 모두 스스로'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들과 이민자들과 현지인들이 사이에 놓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만나게 되는 파편적인 사건들이 '일반적 문화'인지, 아니면 '비상식적 문화'인지 구분하기 위해 서로의 문화권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덤불숲에서 섹스하는 유럽 남녀를 보고 '아, 여기선 다들 이렇게 섹스하는구나. 나도 덤불숲에서 섹스해야지'라거나(동화),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보고 '그래, 무슬림들은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야만적이고 성차별적 족속들이구나. 상종을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배척)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라면을 먹을 때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면 당황할 수 있구나'라고 이해하고, '한국 사람들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라면을 먹으면 더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서로의 문화를 헤아려야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보다 완전한 통합에 이를 수 있다.
통합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는 네덜란드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극우파 정치인들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지난해 네덜란드는 학교, 병원 또는 공공 교통과 건물에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네덜란드 상원의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얼굴과 몸 전체를 덮는 부르카, 얼굴을 덮는 니캅의 착용 행위를 범죄로 규정했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에 힘입어 네덜란드의 국가주의자들은 모든 무슬림 이민자들을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데다가, 관용을 중요시하는 네덜란드의 사회 이념에 융합하지 못한 집단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관용적인 사회 이념에 융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완전히 도덕적으로 '계몽' 하거나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파리 여행길에 만난 친구 Adam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무슬림이면서 동시에 덴마크 사람이었다. 성평등지수가 가장 높고, 동성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해 준 세계 최초의 국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덴마크와, 무슬림이라는 그의 종교는 언뜻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센 강변을 함께 걸으며, 그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아담, 너는 이민자 유입으로부터 유래된 문제들이, 종교의 문제와 문화적 차이 가운데 어디 있다고 생각해?"
그러자 아담은 재미있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나는 문화적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해. 내 경우에는, 아버지가 알제리계 무슬림이고 어머니는 개신교에서 이슬람 교로 개종한 덴마크 사람이야. 나는 이슬람 교를 믿는 무슬림이지만, 매일 기도를 드리거나 이슬람 교 명절을 기념하지는 않아. 덴마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수많은 무슬림 이민자들, 그리고 그 가정의 자녀들처럼 나도 평범한 덴마크 사람이야.
너도 알겠지만, 덴마크는 종교에 상당히 개방적이고, 종교생활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반면에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나, 유대인이 75%를 넘는 이스라엘은 문화, 사회, 정치가 기능하는 데 종교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종교적인 색채가 깊게 배어 있고. 너희 한국도 공자를 믿는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아마 공자의 사상이 한국사람들의 가치관에 깊게 자리 잡고 있을 걸.
그래서 갑갑작스럽게 전쟁을 피해, 혹은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를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망명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차이와 어려움을 겪게 될 거야. 네가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을 거고, 혼란스러움에 빠지기도 했던 것처럼 준비 없이 전쟁을 피해, 혹은 취업을 위해 엉겁결에 유럽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도 너와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 보통은 현지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차이를 이해하면서 서서히 유럽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게 일반적일 거야.
그런데 최근 유럽의 난민/이민정책은 도덕적 가치관을 앞세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난민들을 무조건 수용한 것 같아. 물론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만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내전이 급격하게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야. 제대로 된 교육, 소통, 일자리와 같은 이민정책 없이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들이 당장 살아남기 위해 좀 더 친숙한 주변 이민자들, 먼저 들어온 친지들에 의존하고 똘똘 뭉치게 돼 버렸어. 이민/난민자들 사회와 기존 유럽인들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어려워지고, 오해가 반복되면서 아예 손을 놓아 버린 거지."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로의 문화권에 긴밀하게 연결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서로의 문화권이 '하나의 덩어리(One mass)'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라 세대, 계층, 종교, 인종,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추상적이고 가변적인 개념(Abstract and Changeable concept)'이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에게 묻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질문했던 네덜란드인 친구는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온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남들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던 네덜란드 문화가 사실은 '상식적인' 문화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로 덤불숲에서 사랑을 나누는 게 그들의 문화일지도 모른다(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혼란과, 오해와 오류를 겪으면서도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완전한 이해(complete understanding)'을 향해 끝없이 서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에서, 통합 정책은 동화 정책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고, 더 정교해져야 한다. 가장 다양한 국가 출신 이민자들을 가진 네덜란드에서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있는 과제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실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동남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한국의 이민자 정책이 완전히 박살난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천여 명 남짓한 피난민이 한국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면서, 한국에선 '외지인'을 둔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3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살아왔음에도 '남의 일'로 제쳐 두었던 고민을 이제야 시작하고 있다. 우리의 관점을 송두리 째 바꿔 놓을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까?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까?
<References>
1. Kešić, Josip, and Jan Willem Duyvendak. "Anti‐nationalist nationalism: the paradox of Dutch national identity." Nations and Nationalism 22.3 (2016): 581-597.
2. VOX, 2018-06-29, ‘The Netherlands just passed a law banning face veils in public build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