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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Sep 03. 2018

자전거와 네덜란드

자유로운 자전거, 여행자들의 안식처

네덜란드의 여름은 녹록하지 않다. 햇빛이 뜨거운 한낯의 광장에 옷을 훌훌 벗었다가 저녁 공기에 감기가 걸려 버린다. 제일 두꺼운 옷을 껴 입고 밤새 끙끙 앓다가, 하룻밤을 꼬박 앓고 나서야 집 앞 카페에 기어 나와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오늘이 여행 마지막 날인 덕에, 이렇게 쓰러져 있어도 되는 건 꽤나 괜찮은 행운이다. 마지막 날까지 네덜란드를 조금이라도 더 둘러볼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니까, 마침내 자유로워진 셈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더 돌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서야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 된 것 같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을까?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거라면, 어제도 했다. 한국에서도 했다. 슈퍼마켓에서 맥주와 저녁거리를 사는 거라면 대학 기숙사에서도 항상 하던 일이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매일 새로운 박물관, 새로운 모험,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서야 할 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그것도 시큰둥해져 버린다. 네덜란드에 온다고 해서 특별히 무한한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름다운 야경, 미술품을 몇 번 더 본다거나, 몇 장 더 찍는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러시아 현대미술에 대해서,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와 그 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매료되기 위해 애쓰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구글에서 네덜란드를 검색해 보기만 해도 그럴 듯한 하루 여행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우리가 찍은 것보다 몇 배는 더 멋진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림을 몇 백 점을 본다 해도, 수많은 사진을 찍는다 해도, 그것은 ‘진짜 여행’과 같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체 '유용하다'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사 이래 모든 인류의 유용성의 총합은 바로 오늘날 이 세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용한 것보다 더 도덕적인 것도 없지 않은가.

- 밀란 쿤데라, [불멸] –


멍하니 운하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바람이 강물에 부서진다. 손을 뻗어 강물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이건 울퉁불퉁할까, 차가울까, 아니 축축할까? 나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을 보다 보니 이 순간, 잡다한 생각들과 감정으로 헝클어진 풍경이 아무개 씨의 인상파 그림처럼 느껴진다. 제멋대로인 머릿속이 이제는 자전거를 생각한다. 나는 네덜란드에 있다. 이런 생각들은 홀로 네덜란드에 떨어져 거리를 빼곡히 메운 자전거를 바라보고 있어야만 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이, 선택하지 않은 모든 것이 모두 내 자신이 된다. 버스가 없어 낙담하는 것도 '나'고, 상관하지 않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도 '나'다. 지금 거기를 선택하는 것이 '내 여행'이 되고, 지금 거기 가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내 여행'이 된다. 그 모든 '나'를 단숨에 만나게 되는 건 오직 여행을 떠났을 때뿐인 것이다. 

-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

자전거는 남다른 구석이 있는 이동수단이다.

전용도로가 마련되어 있지만, 그게 다닐 수 있는 길의 전부는 아니다. 시원하게 뻗은 전용도로를 다라 내달릴 때도 있지만, 문득 노을이 보고 싶은 저녁이면 낯선 골목을 날쌔게 내달려 저무는 해를 쫓아갈 수도 있다. 그러다 낯선 마을에 이르면, 갈길 바쁜 자전거를 세우고 주말을 축하하는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작은 축제를 가만히 즐길 수도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축제들을 사랑한다. 주말이면 골목마다 어렵지 않게 작은 축제들을 볼 수 있다.

때때로 차도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한다. 인도를 조금 넘나드는 것 정도는 애교다. 나아갈 길이 헷갈려 불안할 때에는, 잠시 비껴서서 나아갈 길을 고민할 수도 있다. 제 때 도착하지 못할 만큼 느리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을 놓칠 만큼 서두르지도 않는다. 자전거에게 주어진 규칙은 단 하나, 각자의 길을 존중하는 것 뿐이다. 빠르게 가는 사람을 위해 길을 비켜주고, 나아갈 길을 고민해 멈춰 선 사람에게 요란하게 핀잔을 주지도 않는다.


네덜란드에는 이런 자전거들이 아주 많다. 1500만명이 사는 나라에 1700만대가 넘는 자전거가 등록되어 있을 정도니, 전 세계의 자전거들이 애써 네덜란드로 찾아 오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자전거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켓과 학교를 오간다. 교수님도 자전거로 강의에 오시고, 총리도 자전거로 출근할 정도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자전거들이다.

네덜란드의 총리도 그런 '자전거'다.

네덜란드의 자전거들은 아주 자유롭다. 도시 어디에나 자전거 전용도로가 마련되어 있고, 사람들은 자전거를 존중한다. 네덜란드의 길은 특별히 넓지 않지만, 자전거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도로 위의 차들은 항상 자전거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자전거 신호등은 자동차나 보행자 신호보다 훨씬 자주 켜진다. 차로가 좁아질 지언정, 자전거 도로는 좁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자전거이고, 자전거가 곧 그들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사람 사는 냄새, 땀 냄새가 아주 많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도 자전거다.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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