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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Nov 09. 2018

 자유주의자의 민족주의: 네덜란드의 무슬림 차별정책

네덜란드로 보는 한국: 진보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보수적일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네덜란드의 문화-정책은 일견 진보적이면서도 한편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짙게 띄고 있다. 백신 접종을 의무에서 선택으로 전환함으로써 개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한편으로 네덜란드 국민이 종교에 관한 한 공공의 이익보다도 개인의 믿음을 우선할 만큼 보수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째서 때때로 보수적이면서도, 또 진보적일 수 있을까? 어째서 그들의 정책은 진보적으로 해석되면서도 또 보수적일 수 있을까? 이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의 모순적인 정체성 "반 민족(혹은 국가)주의자의 민족(혹은 국가)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태도는 크게 2가지로, '나쁜'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착한' 민족주의를(일반적으로 네덜란드식 민족주의가 여기에 해당) 고수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다운 것, 네덜란드 국가주의란,,이런 것? :p
네덜란드인들이 지키고자 하는 '네덜란드다운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네덜란드인들만의 원칙이나 조직이 아니라 일련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진보적이고, 현대적이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네덜란드의 자화상은 그간의 역사에서, 그리고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그 유용함이 입증되어 왔다.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정치적, 역사적 논증을 통해 때로 민족주의를 해체하려 하기도 한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무종교를 선택하고 있는,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화에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람들이 네덜란드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네덜란드인들은 어떻게 '보수성'까지도 띌 수 있을까? 

몇 달 전, 네덜란드는 학교, 병원 또는 공공 교통과 건물에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네덜란드 상원의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얼굴과 몸 전체를 덮는 부르카, 얼굴을 덮는 니캅의 착용 행위를 범죄로 규정했다.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는 네덜란드 사회를 점유하고 있는, 진보적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따르는 사람들이 '네덜란드식 톨레랑스'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편협(intolerant)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새로운 힘을 얻고 있는 네덜란드 극우파 정치인들.

오늘날 네덜란드 사회 곳곳의 '톨레랑스'와 '자유주의적 가치관'은 이주민과 종교적 소수자들을 문화적 타자로, 그리고 국가 공동체의 외부인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감에 힘입어 네덜란드의 국가주의자들은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대규모 이민에 대한 거부감에 초점을 맞추어 무슬림 이민자들을 보수적이고, 종교적이고, 관용적인 사회 이념에 융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완전히 도덕적으로 '계몽'하거나 적극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리 여행길에 덴마크인 친구 Adam을 만나 센느 강변을 걷다 물었다. 너도 무슬림이잖아. 시민의식이 높은  덴마크 사람이고. 너는 이민자 유입으로부터 유래된 문제들이 종교의 문제와 문화적 차이 가운데 어디 있다고 생각해? 

나는 문화적 차이,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유럽 이민정책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 

내 경우에는, 아버지가 알제리계 무슬림이고 어머니는 무슬림으로 개종한 덴마크 사람이야. 나는 이슬람 교를 믿는 무슬림이지만, 매일 기도를 드리거나 이슬람 교 명절을 기념하지는 않아. 덴마크에 정착한 수많은 무슬림 이민자들, 그리고 그 가정의 자녀들처럼 나도 평범한 덴마크 사람이야. 반면에 이슬람 국가인 알제리나, 유대인이 75%를 넘는 이스라엘은 문화, 사회, 정치가 기능하는 데 종교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종교적인 색채가 깊게 배어 있고. 너희 한국도 공자를 믿는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아마 공자의 사상이 한국사람들의 가치관에 깊게 자리 잡고 있을걸.

그래서 갑작스럽게 전쟁을 피해, 혹은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를 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망명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차이와 어려움을 겪게 될 거야. 네가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을 거고, 혼란스러움에 빠지기도 했던 것처럼 준비 없이 전쟁을 피해, 혹은 취업을 위해 엉겁결에 유럽으로 흘러들어 온 사람들도 너와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 보통은 현지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차이를 이해하면서 서서히 유럽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게 일반적일 거야.

그런데 최근 유럽의 난민/이민정책은 도덕적 가치관을 앞세워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난민들을 무조건 수용한 것 같아. 물론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만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내전이 심각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야. 제대로 된 교육, 소통, 일자리와 같은 이민정책 없이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들이 당장 살아남기 위해 좀 더 친숙한 주변 이민자들, 먼저 들어온 친지들에 의존하고 똘똘 뭉치게 돼 버렸어. 나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면 미국에 있는 덴마크 사람들부터 찾으려 하는데, 그런 상황이 현명한 대책 없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버렸어. 이민/난민자들 사회와 기존 유럽인들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어려워지고, 오해가 반복되면서 아예 손을 놓아 버린 거지.

좀 더 시간이 주어지면 서서히 해결되겠지만, 역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


<References>

1. Kešić, Josip, and Jan Willem Duyvendak. "Anti‐nationalist nationalism: the paradox of Dutch national identity." Nations and Nationalism 22.3 (2016): 581-597.
2. VOX, 2018-06-29, ‘The Netherlands just passed a law banning face veils in public buil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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