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는 공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을 만드는 공간, 도시재생 건축
네덜란드에서의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겨울을 맞았다. 매일 아침 자전거 도로를 빼곡하게 줄지어 달리던 사람들도, 이상하다 못해 감사할 정도로 마켓 코너를 가득 채웠던 수십 가지 종류의 맥주들도 슬슬 익숙해지는 계절이다. 이렇게 신기한 녀석들이 하나, 둘 익숙해질 때 비로소 그 매력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네덜란드 유학생활에 그럭저럭 적응해 갈 무렵, 네덜란드 곳곳을 여행하며 느끼는 것은 유독 네덜란드에 벽돌 건축물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집이나 관공서, 오래된 건물이나 최근 지어진 건물, 주택과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유독 벽돌(특히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많다. 네이메헌(Nijmegen)이야 말할 것도 없고, 로르몬드(Roermond), 위트레흐트(Utrecht), 암스테르담(Amsterdam), 헤이그(Hague),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와 같은 주요 도시들에서는 유독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나 벽돌로 정비된 도로들이 도시 풍경을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어째서 벽돌을 이용한 건축이 이처럼 보편화되었을까? 건축 자재로서 벽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일까? 네덜란드의 지리적-환경적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간척지가 전체 국토의 25%를 차지하는데다 최대 해발고도가 322.4m에 불과한 네덜란드의 특성 상, 생물 사체의 퇴적(한국)이나 화학적 침전(이탈리아 티볼리)을 통해 얻어지는 석회석을 건축자재로 활용하기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산지가 부족하니 석재가 풍족하지 않아,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지는 화강암 등을 건축 자재로 활용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에 벽돌은 고운 진흙에 열을 가하는 제작 과정이 다른 자재에 비해 어렵지 않은 데다, 강 하류의 퇴적지가 많고 간척사업이 활발한 지역 특성상 운반이나 생산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벽돌이 사랑받는 건축 자재가 된 이유가 이것 때문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악명 높은 네덜란드 기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교차가 매우 큰 탓에 한여름에도 밤이면 서늘해지는 데다, 1년 내내 비가 오는 날이 300일 가까이 되고, 겨울에는 눈/진눈깨비를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특성 상, 혹독한 서리에서부터 더운 기후에 이르는 온도 변화를 견딜 수 있는 벽돌 건축이 애용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벽돌의 나열된 장점들을 주욱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의문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옛날부터 벽돌을 애용할 만 한 이유가 있었다는 건 알겠는데, 2차 세계대전으로 네덜란드가 파괴된 이후에도, 오늘날에도 건축에 벽돌을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벽돌은 고열에 굽는 탓에 비나 눈이 자주 오는 네덜란드에서는 공사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며, 요즘에는 유럽에서 규격화된 '유로 폼(form)' 이라는 것이 널리 자리잡은 탓에 콘크리트를 틀에 부어 굳히는 방식으로 집을 짓는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벽돌은, 유약 벽돌이든 고벽돌이든, 내/외벽 장식에 그 의미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벽돌 건축의 기능적 특성으로 네덜란드 사람들의 벽돌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오늘날 건축자재로서의 벽돌은 기능보다 외벽 장식의 성격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유럽 최대의 무역항(로테르담)을 갖고 있어 건축자재를 쉽게 수입할 수 있는 네덜란드가 구태여 벽돌에 의존해야 할 필요도 없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세르비아/불가리아를 지나 흑해에 이르는 거대한 운하 운송망을 통해 건축자재를 수입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을 테니까. 그저 벽돌에 대한 네덜란드인들의 무궁한 애정과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 이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풍경'마저도 네덜란드만의 고유한 정체성인 것은 아닐까? 유럽 의회가 1975년 제정한 '건축 유산에 관한 유럽 헌장'에서는 첫 번째 항에서 건축 유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축 유산은 기념비적 구조물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우리 도시 속에 있는 작은 건물군과 특징적 마을의 패턴도 포함된다."
"The European architectural heritage consists not only of our most important monuments: it also includes the groups of lesser buildings in our old towns and characteristic villages in their natural or manmade settings."
- European Charter of the Architectural Heritage, 1975 -
하이데거는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을 통해 장소에 새겨진다'라고 주장했다. 건축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직하고, 그들만의 문화와 가치관, 존재를 만들어내기에 혹자는 '건축은 존재'라 말하기도 했다. 어제의 건축과 오늘의 건축, 오늘의 네덜란드 풍경과 내일의 네덜란드 풍경은 분절될 수 없습니다. 마치 서울 곳곳의 판자촌을 밀어내고 들어선 아파트나, 오밀조밀했던 경리단길에 들어선 명품 브랜드샵들이 특색 없는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네덜란드는 과거의 흔적을 쉽게 부정하거나, 지우려 애쓰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의 집들은 낡은 벽돌집들 사이사이로 새로운 벽돌집들이 쌓아올려진다. 버스정류장에도 벽돌로 땅을 다져 도로를 만들고,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갈 정류장도 벽돌로 만든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들을 길러 준 마을의 풍경을 기억하며,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어간다. 그들의 마을은 시간을 담은 공간으로, 사람을 길러내고 사람의 손에 재탄생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사라진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로 번영을 맞이했고, 철골과 콘크리트, 유리 등 네덜란드 건축가들을 총동원하여 '현대 건축의 성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무역의 중심이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으로 옮겨 가고 거주민들이 도심을 떠나며 '도심 공동화'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로테르담은 버려지고 낡은 도시를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대신 거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면서 도시를 '재생'했다. 한때는 공공 수영장으로 운영되던 건물을 커피 찌거기를 이용한 버섯 농장으로 변신시켰고, 버려진 창고/공장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푸드코트와 플리마켓으로 재탄생시켰다. 운하 곳곳에 정박해 있던 배들은 레스토랑과 호텔(보트하우스)로 리모델링되어 로테르담에 고유한 정체성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암스테르담은 도심지의 오밀조밀한 골목 위에 세련된 고층 빌딩을 쌓는 대신, 3층 높이의 작은 주택-상점가 골목과 그들을 휘감는 운하를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간척사업을 통해 운하의 물을 완전히 빼 버리고 높은 임대료의 건물을 지으려 했더라면 진작에 짓고도 남았을 땅에는 여전히 물과 배가 흐르며 '암스테르담'만의 멋을 진하게 품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재소자가 부족해 문을 닫게 된 암스테르담의 낡은 감옥을 리모델링해 1350여 개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로 개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네덜란드가 만든 사람들이 이곳을 만들고, 또 이곳이 새로운 사람들을 길러 낼 테니 이러한 건축 문화에 과거를 이해하고 고유한 가치관으로 현대와 결합시키는 네덜란드만의 '멋'이 이미 담겨 있는지 모른다.
<참고문헌>
1. The NYT, 2017-02-10, Dutch Get Creative to Solve a prison Problem: Too Many Empty Cells
2. 승효상 지음,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 출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