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배진 Mar 20. 2021

영화 미나리를 봤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깨닫게 한 영화.

드디어 영화 미나리를 봤다.


국내에 개봉하기도 전부터 화제를 모아서인지, 배우 윤여정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 미나리를 꼭 봐야지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개봉하고도 몇 주째 영화를 보지 않다가 오늘에야 겨우 보았다.


브런치 피드에는 ‘미나리가 별로였다’는 내용을 담은 포스팅 제목도 보였고, 실제 영화를 봤다는 사람이 주변에 딱히 없을 만큼 개봉 후 이 영화에 대한 열기가 많이 식어있었다. 하지만 콘텐츠는 자고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와 불호가 나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응이 극적으로 갈리는 만큼 더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쯤 지났을까. 초반부부터 나는 안도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럽고 과장되지 않은 톤 앤 무드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부부와 그들의 아이들이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인 미국 아소칸주로 이사하고, 정착해 나가며 겪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대도시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평생을 살기보다는 시골에서 농장을 일구는 꿈을 꾸는 남편 제이콥과 아이들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다시 도시로 가고 싶은 아내 모니카 사이의 갈등. 그리고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멀리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할머니 순자와 여느 할머니와 다르다며 할머니를 밀어내는 손자, 손녀 사이의 갈등, 그리고 가족이 끝내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어려움과 고민이라 공감할 수 있었고, 작은 웃음 포인트들도 있어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 사람이 살아가는 게 이런 거구나, 그걸 보여주는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병아리 감별사가 아니라 농장주로 살기 위해, 자신의 꿈과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 제이콥은 최선을 다하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허허벌판의 컨테이너 집으로 이사 간 첫날부터 아내 모니카의 실망스러운 태도를 마주해야 했고, 주변 사람들은 전 농장주가 쫄딱 망해 자살한 땅에서 새로 시작한 제이콥이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를 은근히 궁금해한다.  


아내 모니카는 모니카대로 남편이 농장을 일구는 동안, 병아리 감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심장병에 걸려 약한 아들 데이비드를 돌보며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윤여정이 맡은 역할, 할머니 순자 역시 멀리 타국으로 와서 딸 내외가 집을 비운 동안 손자와 손녀를 돌보고, 미나리를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크게 부모님께 떼쓰지 않고, 자신들의 일상을 보낸다.


결국 이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함께 잘 되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를 쓰고 있었는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첫 농사를 지은 농작물을 저장한 창고에 불이 난다. 미국으로 와서 병에 걸려 제 몸을 온전히 가누지 못하는 순자가 쓰레기를 태우다가 불이 난 것이었다. 이 즈음 농장을 끝까지 키워보고 싶은 남편 제이콥과 아픈 엄마와 아픈 데이비드 때문에라도 대도시로 가고 싶어 하는 아내 모니카의 갈등이 최고조에 도달해 있었는데, 데이비드가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날- 그리고 아내 모니카가 헤어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날, 부부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창고가 화염에 휩싸인 것을 보게 된다. 부부는 창고 속으로 뛰어들어가 농작물을 구하고, 결국은 함께 망연자실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창고를 바라본다. 그리고 화재의 원인이었던 ‘순자’는 집을 떠나 하염없이 걷다가 아이들의 돌봄으로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제이콥과 아내가 새롭게 우물을 파기 위해 땅을 점검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 속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가 다 제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내에겐 ‘농장’’을 ‘가족’보다 우선시했다고 원망받는 남편 제이콥이지만, 나는 그가 그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남편과 갈등을 빚지만 시종일관 차분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아내 모니카 역시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좋은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딸이었다. 딸 내외를 위해 멀리 한국에서 미국으로 와서 병까지 얻게 된 순자 역시, 아픈 몸을 이끌고 창고를 정리하는 등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좋은 할머니였다.


서로를 위해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이 가족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이 일어난다. 만약 이게 그저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면 서로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이렇게나 굴곡지게 표현할 리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1년 내내 농사지은 농산물을 거래할 거래처를 뚫은 날, 창고에 불이 나서 지난 1년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기도 한다. 최선을 다 했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도 갈등이 일어날 수 있고, 최선을 다해 살아도 가진 것을 다 빼앗기는 악재를 만나기도 하며, 소중한 사람이 병들고 아픈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지막에 새롭게 농장을 일구기 위해 우물 자리를 확인하는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최선을 다했고, 그런데 큰 좌절과 실망을 만났고, 그럼에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노력했다고 해서 좋은 일만 일어나라는 보장이 없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한들 다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드라마틱하거나 가슴이 벌렁거리는 거창한 이야기가 담겨있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것이 ‘권선징악’적인 내용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영화 미나리. ‘재미없다’는 한 편으로의 반응과는 달리, 내게는 참 재미있고 의미 있었던 영화였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리뷰] 파친코(Pachioko)/ 이민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