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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Mar 31. 2021

당신이 말하기 전까지 나는 몰라요.

동료의 태도가 짜증스러웠던 진짜 이유

콘텐츠 제작 개수 문제로 시작된 '디자이너 vs 기획자'간의 신경전은 하루가 지난 뒤도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서로의 입장만 항변하는데 치중한 장문의 메일을 두어 번 주고 받은 뒤 대화가 필요할 것 같아 '미팅을 하자'는 말로 두 번째 메일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미팅이 시작되기 전까지, 언쟁이 오갔던 어제보다는 나았지만 여러 생각들로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아니, 왜 곱게해도 될 말을 짜증스럽게 해서 이런 불쾌감을 주는거지?'

'제대로 일목요연히 조율할 내용을 설명해도 되는데 왜? 내가 만만한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혼자 툴툴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라 조금 뒤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선 디자이너와 미팅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 목록을 만들고, 해야할 말들을 정리했다.


1. 1주일 내 제작 가능한 콘텐츠 수

2. 급한 변동사항이 생겨 추가 콘텐츠가 생길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3. 디자인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4. 우리가 왜 신경전을 치르며 이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망(?)의 디자이너와의 미팅 시간.

서로 마음이 상해있는 상태라 많이 불편할거라 생각했지만, 디자이너도 나도 막상 마주하니 감정은 빼고 서로의 입장만 담백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나는 먼저 '어떤 부분이 불편했는지, 두 번의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이해했다. 하지만 기획자의 입장은 이러했다.'라고 설명하며 디자이너가 느꼈을 불편을 인정하고, 다만 입장이 다른 내 상황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사전에 정리한 1, 2, 3의 안건을 어떻게 조율하면 될지를 설명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진행되고, 서로 해야할 말을 조목조목 주고받고나서 미팅이 끝날 무렵 조금 망설이다가 나는 이런 말을 꺼냈다.


"D님, 사실 콘텐츠 일정이나 볼륨 조율을 요청주시는 건 큰 문제가 아니예요, 지금까지도 늘 요청주시면 조율하면서 일을 해왔고요. 그런데 이번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제가 어제 D님 자리에 기획 설명을 드리러 갔을 때 이미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일정이나, 콘텐츠 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예요. 영문도 모르는 체로 D님께 갔다가 화가난 어조로 '못한다, 너무 많다, 이렇게 주면 어떻게 하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화가나서 더 조목조목 따지게 되었고요. 제 입장에서는 D님이 무턱대고 짜증내는 걸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러자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해왔다.

"저는 고래님이 가끔 디자인을 요청할 때 제가 디자인 에이전시가 된 기분을 느껴요. 다른 팀은 미안하다, 죄송하다, 양해부탁한다-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주시는데 고래님은 당연히 해야하는일을 주는 것처럼 '이거 **일까지 부탁해요.'라고 이야기하시니까요."


그 순간 나는 D의 짜증이 사실은 '콘텐츠 갯수'가 아니라 업무를 요청하던 내 태도에 대해 D가 느껴왔던 불만이 터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에대해 데일리 업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종종 프로젝트성으로 업무를 맡기는 다른 분들과는 입장이 다르다고도 생각했다.(데일리 업무를 늘 조심스럽게 요청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불쾌감을 느꼈다면 내 태도 또한 점검해봐야 겠다 싶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런 느낌을 받으셨나요, 데일리 콘텐츠니 발행 일정이 정해져 있고- 알고 있으시다고 생각해서 '제작 부탁한다' 의 톤(?)으로 이야기 드렸는데, 불쾌하게 느끼셨군요... 그럼 저도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제 태도적으로 개선 필요한 부분이 뭔지 고민해볼게요."


이 대화를 하며 놀랐던 것은 나는 늘 항상 D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업무를 요청하고, D가 조율 요청을 할 때도 되도록 그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의도와 달리 그녀는 정 반대로 내 태도를 해석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이 대화를 다시 떠올려보며 나는 이 대화를 통해 내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 문제의 '진짜 이유'를 상대에게 솔직히 말하는 것은 옳다.

망설임 끝에 이 논쟁(?)은 사실 '짜증스러운 당신의 말투'였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너의 태도에 내가 불쾌감을 느꼈어'라고 솔직히 말했기에 나는 이 사건(?)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D로부터 들을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불만을 쌓아오고 있었는지를 몰랐다면 나는 1, 2, 3의 실무적 안건만 대충 합의한 채로 문제의 본질인 서로의 '태도'에 대해서는 말도 안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둘, 그럼에도 화나기 전에 요청 사항을 이야기하자.  

사실 회사 내 동료끼리의 언쟁은 서운하거나 불편감을 느낄 때 바로 말하지 않고 '오늘까진데 왜 안줘?, 왜 이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 왜 이렇게 많은 양을 주지?' 같은 생각이 쌓였다가 터지면서 시작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터지는 순간'은 '짜증과 화'라는 감정이 켜켜히 말 속에 묻어난다. 그럼 듣는 상대도 기분이상해버리니 이성적 대화는 물건너가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다면, 근데 그 동료로 인해 뭔가가 불편하다면 그냥 그 순간 가볍게 이야기하자. '이건 이렇게 해줄수 없어?'라고. 그렇다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거나, 내가 더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상황이 보다 쉽게 조율될 테니.


그게 무엇이든 말하지 않으면 타인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 말을 하는게 과한가? 번거로운데 그냥 참아? 하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조금 더 수월한 회사 생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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