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쓰기
책을 다 읽고, 독서감상문을 쓰기 전 나는 가장 먼저 ‘비망록’이라는 단어의 뜻부터 찾아봤다.
비망록 :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둔 것..
이유는 이 책을 내가 ‘잘’ 읽은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 나는 이 책이 어떤 직업이 왜 사라지는지, 무슨 위기에 처했는지를 알려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책 속의 글은, ‘사라질 직업’에 대한 분석보다는 작가가 경험한 일터의 생생한 기록이었다. 꼭 사라질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본인이 지나온 일터에서의 경험을 ‘사라질 직업’이라는 키워드 아래 묶어놓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럼에도 책은 흥미로웠다. 작가가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쏟아내는 비유와 은유들, 덕분에 무심코 웃음이 새어 나왔고,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진짜 일상이 흥미로웠다.
사실 내 주변에도 있다. 나이를 이유로 경비 일을 하게 된 사람, 요식업에 뛰어들었다가 좌절한 친구, 콜센터에서 일하는 것을 검토해 본 지인, 보험 영업을 하다가 현타가 와서 도망치듯 나온 이들까지.
그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나 역시 사무직 노동자로서 느끼는 나의 피로를 말하곤 했다. 모든 일은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 르포를 보며, 그들의 고생이 나의 것과는 조금 달랐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몸으로 겪은 현장에서의 일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었고, 청소, 경비, 콜센터처럼 우리가 ‘필요로는 하지만 잘 들여다보지 않는’ 일터의 고단함이 절절히 느껴졌다. 특히 콜센터 상담사의 이야기는 굉장히 강렬했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그 일을 한다면, 그냥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라지는 직업’의 목록에 있어서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 직업을 잃은 사람들이 느낄 허무함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이 책은 결국, ‘사라질 직업’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내가 알지 못했던 삶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는 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 작가의 ‘쓰기’ 이야기를 통해서야 나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서로 ‘나랑 상관 없다고 생각한 존재‘들이,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글을 쓰고 있었다.
최근 어떤 애니메이션을 보다 문득 ‘왜 나는 도덕,윤리,상호이해 같은 것에 대해 더이상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자연과 인간은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같은 세상의 질서의 주축을 이루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을까?
언젠가부터 ‘생존’과 ‘개인’만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다시 좀더 의식적으로 사회철학서나 인문학 책을 찾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기대와 내용이 같진 않았지만, 이런 생각에 변화를 가져온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