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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 노래를 들은 이유

서른 네 번째 쓰기

by 박고래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씻고 옷을 입은 뒤 현관문을 박차고 나온 날

기쁘지도 나쁘지도 않은, 회색빛의 무표정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고가던 어느 아침,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멍-하니 굳어있던 감각을 깨우고,

기분좋은 아침의 활기를 선사했다.

언젠가 참 많이 들었던,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잘 듣지 않게된-

오래 전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된 곡이었다.


아침이 정말 좋아
그댈 볼 수 있어 좋아
누가 뭐라 해도 난
뒤 따라 걸어 간다
힘겨운 내 삶에 찾아 온 그댄
날 웃게해

이지형 [산책]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희망과 기대에 찬 느낌의 보컬이 ‘아침이 정말 좋아!’하고 말하는데

나도 덩달아 '그래 좋군! 좋은 시작이야. 좋은 아침이야.' 하는

단순한 생각과 함께, 즐거운 마음이 어딘가에서 흘러들었다.


그 아침을 떠올리니, 음악이 내 삶의 여러 장면에서

중요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무기력하고 지쳤던 순간

나를 달래주고, 또 힘을 줬던 노래를 찾아봤다.


난 왜이리 바보인지 어리석은지
모진 세상이란걸 아직 모르는지
터지는 울음 입술 물어 삼키며
내려야지 일어설 때
저 멀리 가까워오는 정류장 앞에
희미하게 일렁이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알 수도 없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댈 봤을 때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댈 안고서 그냥 눈물만 흘러

패닉 [정류장]


언젠가 서울에서 이리치이고 저리 치여 패잔병이 느낄 법한 지친 마음을 안고

부모님 댁에 가던 날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엄마, 저 이제 시내버스 갈아타요.’하고

전화를 한 뒤,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가벼운 바람이 부는 초여름 저녁무렵이었는데,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누군가가 환히 웃는 얼굴로 내게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엄마였다. 오랜만에 만난 딸이 반가워, 전화를 받고 1층에 내려와 나를

기다리고 계섰던 거다. 사회 초년생 시기, 잔뜩 움츠린 딸의 어께를 무겁게 짓누르는 가방을 받아드시고,

손을 잡고 경쾌하게 걷는 엄마 덕분에 슬픈 마음이 가셨던 기억이 난다.


찌는 듯한 어느 여름
남인도에서
내가 애써 예약해놓은 멋진 럭셔리 버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내가 만난 건
사람 염소 닭이 같이 타는
낡아빠진 시골 버스
나의 황당한 표정
화가난 모습 뒤로
어느 인도 할머니는
돈이 없어 내려야 했어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런 일이
누군가에겐 럭셔리한
그래 내가 탄 버스는
럭셔리 버스 맞았어

럭셔리 버스 럭셔리 버스 부릉
우리가 함께 타고 가는 멋진 순간들
럭셔리버스 럭셔리버스 부릉
힘든 인생은 없어 럭셔리한 경험만 있을 뿐

원모어찬스 [럭셔리 버스]


이 노래는 내 커리어에서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시기에 정말 많이 들었다.

버티고 싶고 넘어서고 싶은데, 아주 복합적인 요소들로 삶이 지나치게 괴로웠던 그때.

출퇴근길에 럭셔리 버스를 들으며, 힘듬을 위로 하곤 했었다.

‘그래, 내가 탄 버스는 럭셔리버스지’ 하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음율로 듣는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가사를 음미한다고 하는데,

내 경우엔 상황에 따라 음율로, 가사로, 곡의 전반적 이미지나 보컬의 목소리 때문에,

멋진 리듬 또는 반주음이 좋아서 등 정말 많은 이유로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이처럼 음악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기쁨을 더하며, 또 집중력을 북돋우는 힘이 되어 내 삶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과거에는 내가 왜 이 노래를 반복해 들었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 순간의 나에게 꼭 필요한 감정과 힘을 그 노래가 전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 당신이 자주 듣는 노래 역시, 어쩌면 지금의 당신 내면을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노래 하나에 웃고, 노래 하나에 우는’ 그런 날들이 있다면, 그 노래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어떤 노래든, 그 안에는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을 이해할 실마리가 숨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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