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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Jul 26. 2021

전화위복 야전병원

Bravo, my life!(15)

대필작가의 말

-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기계적으로 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인데요. 좋게 말하면 직업적 노련함이고 안 좋게 말하면 관성에 젖은 거겠죠. 오늘 에피소드를 보니 관성에 젖은 의사와 노련함을 갖춘 의사로 인해 할아버지는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셨네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에피소드를 정리하면서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 내 일에 좀 더 전문성을 갖고 충실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조금 뜬금없나요? 하하.


아무튼! 이미 지난 일이지만 저도 정리하는 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응원했답니다. 스포일러를 해보자면, 할아버지의 미국을 향한 여정은 다행히도 계속되겠네요. 쭈욱-!




 다행히 야전병원 식구들은 심신이 약해져 있던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특히 내가 폐병 치료 중임을 아신 병원장님께서는 행정과에 보직을 주면서 아침에 출근하면 서류 정리나 해서 주고는 골짜기에 가서 수양하라고 배려해 주셨다. 그리고 약제 과장을 불러 안 준위 폐가 안 좋으니 파스제트와 소화제를 불출해 주고 스트렙토 마이신을 하루 건너 한 번씩 맞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원장님뿐만 아니라 부관학교에서 같이 교육을 받았던 간호장교 조 중위도 나를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모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약도 먹고 주사도 맞으며 지내던 어느 날, 조 중위가 우리 병원 X-Ray가 신형이고 좋은 거니 한 번 다시 찍어 보자고 했다. 당시 X-Ray 과장이던 김중임에게 이야기하니 잘 생각했다면서 그날 바로 찍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김 과장은 자기가 보기엔 폐에 이상이 없다면서 서울대학병원에 계시는 은사님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권위 있는 분이니까 한 번 보여 드리고 월요일에 확실한 결과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휴일 내내 마음을 졸이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김 과장에게 달려갔다. 그는 웃으면서 은사님이 이상 없다고 하셨으니 한 턱 내라고 농담을 했다. 오진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끙끙 앓았는데,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재검을 권한 조 중위나 흔쾌히 응해준 김 과장에게 고마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한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눈부신 빛의 세계로 끌어올려 준 것이었다.


 바로 다음날, 의정부 남방리에 있는 43외과 이동병원을 찾아갔다. 미국 사람에게    확인을 받고 확실히 매듭을 짓기 위해서였다. 위병소에 갔더니 미군  사람과 한국인 카투사  사람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조만간 미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려고 하는데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굉장히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X-Ray 과장은 미군 대위였는데 내가 사정 설명을 했더니  왔다고 반겨 주었다.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온다고 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묘한 기분으로  주를 보냈다. 그다음 주에 찾아갔더니 X-Ray 과장이 반가워하며 ‘Heart and lung normal(심장과 폐 정상)’이라고 쓰인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이제 정말 살았다는 확신과 함께 나를 짓누르던 가짜 폐병에서 완전히 졸업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그날 비가 무지하게 왔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약병을 가지고 나와 비가 억수로 퍼붓는 마당의 큰 돌 위로 냅다 던졌다.  병이 깨지고 약톨들이 빗물에 번져 나가면서 순식간에 마당이 도토리 우린 물처럼 뽀얀 색으로 뒤덮였다. 내리는 빗속에서 한참을 웃다 울다 했다. 몸은 전에 없이 가뿐했고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하늘을 날 것 같았다. 다시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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