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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Mar 04. 2021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Bravo, my life!(4)

 어느  아침 학교에 갔더니 김동택이라고 7 조카뻘 되던 아이가 와서 등굣길에 5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동택이의 기분을 풀어주려 학교 숲에 가서 소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함께 놀았다. 그런데 교실에 돌아오자  선생님이 험악한 얼굴로 모두 소지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소리치셨다. 동택이 사건의 범인이 우리 중에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어머니 심부름을 다녀와 제법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의심의 대상이 됐다. 돈의 용처를 대라는 말에 하나하나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실내화를 벗어 대뜸 뺨을 갈기셨다. 태어나서 처음 맞은 매였다. 분한 마음에  때리냐고 대들었다. 선생님은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다시 세어 보더니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았는지 날더러 집에 가서 쉬라고 하셨다. 심부름을 기껏 하고 억울하게 매까지 맞다니 분통이 터졌다. 책보를  뒷산에 가서 들어가지도 않는 도시락을 억지로 먹었다.

     

 10여 일 후 선생님이 결근을 하셨다. 애들 말로는 폐병을 앓고 계시다고 했다. 맞았던 걸 생각하면 보기도 싫지만 그래도 문병을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댁에 가보니 선생님이 쇠약해진 얼굴로 누워 계셨다.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몸이 점점 더 아프다면서 참새 똥 흰 게 약이라는데 좀 구해다 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얼핏 생각하니 우리 집 주변에 참새가 많으니까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하루 종일 참새 똥을 칼로 걸러 애써 1g 정도 만들었다. 소중히 종이에 싸가지고 가서 드렸더니 자기더러 똥이나 먹으라는 거냐며 내던졌다. 무슨 심술인지 어이가 없어 조금 있다 나와 버렸다. 이후 다시는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여름방학을 보내고 학교 가기 전날 밤이었다. 문 밖에 기척이 있어 나가 보니 선생님이 하얀 한복을 입고 서 계셨다. 깜짝 놀라 괜찮으시냐 하니 '이제 다 나았다'라고 하셨다. 얼굴이 평온해 보이신다고 생각한 순간 눈이 번쩍 뜨이더니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기분이 이상해 더 이상 잠들지 못하고 계속 꿈 생각을 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여기저기 반 애들이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어 선생님이 어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멍하니 간밤의 꿈을 떠올렸다. 이상한 일이다. 왜 내 꿈에 나타나셨을까? 내게 저질렀던 두 번의 잘못을 사과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편안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하면서 말이다.  


 어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뒤 권 선생님이 오셨다. 옹진군내에서 이름난 강령 심상소학교 6학년 담임을 하셨던 분으로 다른 학교에 비해 월등히 많은 졸업생을 상급학교에 보낸 걸로 유명하셨다. 직접 겪어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수업 시간을 칼같이 지키셨고 가르치는 방법도 정확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국어와 수학 시험을 본 뒤 점수를 매겨 월요일에 돌려주셨다. 전에 없던 시험이 매주 있다 보니 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다. 좀 바빠지긴 했지만 성적표가 나오면 기분이 좋았다. 수학은 100점, 국어는 한 개를 틀리거나 100점을 받았다. 시험지를 집으로 가지고 가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뻐하시며 신문처럼 모아 차곡차곡 묶어 두시곤 했다.     


 6학년 때도 권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다. 국어 시간에는 문학 작품을 일일이 해석해 주셨는데 목산 참고서에 나온 해석과 꼭 같이 정확했다. 수학도 철두철미하게 계산하고 또 점검하셨다. 나는 문제만 보면 답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했다. 선생님은 2학기 때 상급학교 갈 사람 8명을 파악해 학교 숙직실에서 11시까지 과외를 시키셨다. 방법도 현명하고 체계적이었다. 각 상급학교에 연락을 취해 모집 인원, 시험 일자는 물론 출제 경향을 완벽히 파악해서 몇 년 간 그 학교들이 시험에 냈던 것들을 반복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요즘 말하는 족집게 과외 같은 식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정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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