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텃밭

by 자급자족

새벽 5시 20분, 눈이 떠졌다. 앞베란다로 나가 비가 내리는지 확인하려 손을 뻗었다. 텃밭에 갈까 망설이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흘렀다. 가을 농사를 위해 밭정리를 하고 싶었다.


6시, 텃밭에 도착했다. 집에서 5분 거리지만 산 아래 위치한 농장이라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농장 앞 주차장까지만 가보고, 차가 없으면 그냥 돌아올 생각이었다. 다행히 옆 텃밭 할아버지의 소형 4륜 이동수단이 보였다. 안심이 되어 차에서 내려 텃밭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와 아침인사를 나누고 나만의 노동에 돌입했다. 10평 남짓한 밭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혹시 모를 모기에 대비해 긴팔 긴바지를 입고 왔는데 올해는 모기가 없다. 차분히 앉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풀을 매기 시작했다. 왼손으로 풀을 살짝 잡아당기고, 오른손으로 호미를 쥐고 긁으니 생각보다 잘 뽑힌다. 어릴 적, 엄마가 풀 매는 법을 가르쳐 주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할아버지께 잡초매트를 구입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잡초매트를 깔아주신 덕에 편하게 농사지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번 가을 농사부터는 양쪽 밭고랑의 풀 관리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


6시부터 7시까지, 딱 1시간 동안 밭을 정리했다. 풀을 뽑고, 방울토마토의 끝순을 잘라주고, 무게를 견디지 못한 고추나무의 가지를 정리하고, 오이와 애호박의 불필요한 잎을 떼고, 뽑은 풀은 지정된 장소에 모아두었다. 더 일하고 싶었지만, 욕심을 누르고 귀가했다. 핸드폰을 안 들고 갔기에 ‘빨리 들어오라’는 남편의 환청도 들렸고, 방학 중인 아이들을 위해 밥 차려주고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구 꺾어온 고추나무에서 고춧잎을 떼어냈다. 고춧잎나물에 활용하기 위함이다. 잎을 정리하니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다. 순간, ‘이거 나뭇가지도 쓰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바짝 마른 고추나무를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참 잘 타던 나무. 지금 생각해 보니 고추작물의 나뭇가지였다. 붉게 익은 고추는 고춧가루로, 질겨진 늦가을 고추는 부각으로, 잎은 나물로, 가지는 불쏘시개로—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현재 텃밭에는 땅콩, 애호박, 청오이, 백다다기, 깻잎, 가지, 꽈리고추, 아삭이고추, 일반고추 그리고 궁채 하나가 심어져 있다. 궁채는 햇볕 탓에 거의 죽고 한 그루만 남았다. 다음엔 차광막을 활용하리라 다짐해 본다.


작년 농사 이후, 교훈을 얻 수확 시기가 늦은 작물들을 한쪽에 몰아 심었다. 그 결정이 맞았다. 덕분에 밭의 2/3가 여유 공간으로 남아 2 모작이 충분히 가능해졌다. 땅이 애매하게 남으면 새로 멀칭을 하거나 밭을 정비하는 데 애를 먹는데, 이번엔 깔끔했다. 하나씩 배워가는 농사, 참 매력적이다.


가을 작물은 아직 고민 중이다. 옆밭 할아버지께서 김장배추와 가을무를 추천하셨다. 하지만 시어머님께서 매년 김치를 담가 주시기에 배추를 많이 심을 필요는 없다.


‘가평 신숙희 막국수집’에서 먹은 백김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백김치용 배추와 무생채용 무를 조금 심으려 한다.

그리고 상추, 궁채, 당근, 시금치, 열무를 아주 조금 심어볼 생각이다. 차광막, 한랭사, 활대도 필요해 보인다. 다시 밭을 디자인한다고 하니 매우 설렌다.


집 바로 앞에 텃밭이 있었다면, 매일 운동 삼아 30분~1시간씩 일했을 것이다. 집 앞에 있는 텃밭에서 애호박을 수확하는 모습을 매일 상상한다.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약간의 거리가 있어 아쉬워하며 지내는 편이 오히려 낫다. 좀 부족해야 소망하며 하루를 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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