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가 길었다. 바빠서 텃밭에 가지 못했다. 생전 처음 재배하는 가을배추와 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퇴근하자마자 텃밭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이는 한랭사, 해충을 막기 위해 모기장을 씌워놓았었다. 자주 텃밭에 못 갈 예정이었던지라 배추가 도망 못 가게 봉인해 놓았다고 보면 된다. 햇볕을 못 보게 한건 아닌가 싶다.
역시나 상태가 좋지 않은 배추와 무가 있어 뽑아버렸다. 과연 11월에는 몇 포기가 남을까? 내 기준에 재배하기 가장 어려운 작물이 배추다. 물을 머금은 작물이라 그런 듯하다.
무 잎도 몇 개씩 따줘서 작물 간 통풍이 잘되게 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맞는 말이다. 자식 돌보듯 애지중지해야 한다.
배추 속을 활짝 열어 보니 배춧잎에 구멍을 송송 내는 애벌레가 있다. 손가락을 넣기에는 무섭다. 가위로 꺼내서....(다음은 상상). 심을 때 배추 간격과 초기 방제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텃밭 아저씨께서 내년에는 농약을 치라고 하신다. "예!!! 내년에는 배추가 어릴 때 야무지게 치려고요." 했더니 웃으신다.
무, 대파, 무청, 배추, 가지를 수확했다. 대~~ 충 열무김치 비슷하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김치 레시피를 브런치 과거글에서 찾아보려다가 직관적으로 생각해 내기로 했다.
무, 배추 여러 번 헹궈 소금물 뿌려두기, 새우젓 2스푼+양파 1개+밥 2스푼+액젓 핸드믹서로 갈기, 생강청 + 고추청 +마늘청 넣기, 고추가루 2컵+진젓+설탕 넣고 숙성시키기, 열무 다 절여졌으면 헹궈서 물기 빼고 버무리기. 맛보고 설탕 소금 추가하기.
맛없으면? 양념맛으로 먹으면 된다. 내 손으로 재배한 것이라 과정을 알기에 버리지는 못하겠다. 시어머니께서 김치 세 번만 연습하면 전문가 된다고 하셨는데, 김치 만들기에 겁이 없어진 듯하다.
띠동갑 친정 오빠에게 마늘밭에는 석회고토를 넣는 거냐고 물었다. 오빠는 다른 재미있는 것도 하고 살라고 조언한다. 여유시간에 텃밭 일구는.. 아니 텃밭에만 몰입하는 내가 답답한가 보다.
ㅎㅎ 버섯도 재배하고 싶고, 닭도 키우고 싶고, 따고 싶은 자격증도 십여 개가 된다고 하면 기겁하겠다. 나는 그런 일이 재미있는데... 오빠는 다른 더 재미있는 일도 하고 살라며 '책을 쓰던지 전공을 살리던지' 하란다.
으잉? 복수전공을 살려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브런치글 한편도 횡설수설인데 무슨 책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리고 책은 남겨서 뭐 하게... 그러고 보니 교수님도 계속 전공서를 쓰자고 하신다. 나는 주식 차트 공부가 더 재미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