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알타리 김치
오전에 어떤 결과를 기다렸다.
○와 X 중 O이길 바라는 이메일 답변을 기다렸다. 좀처럼 메일이 오지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세상 살며 이렇게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은 계속 생길 것이고, 그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짧은 상황을 기다려야 하는가. 당연 정답은 "침착하고 담대하게"였다. 말이 쉽지 담대해지지 않는다. 찬바람 맞으며 뛰는 상상을 하다가 누구라도 혼 좀 내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이미 어른이라 누가 혼내지도 않는다.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걸레 2개를 깨끗하게 빨아 이곳저곳을 광나게 닦는다. 직장 쓰레기통을 비우고, 통도 닦는다. 운동을 한 것처럼 훅 열감이 생긴다. 초조함이 조금 사라진다. '인생 뭐 별거 있어?' 마인드로 살다가 중요한 결과 앞에서는 작아짐을 느꼈다. 결국 오후 2시가 넘어 "○"싸인의 이메일을 받았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튀어나왔다.
불안함과 불안함을 이겨내려던 초조함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해롭다. 마침점을 찍고 내일부터 다시 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이 마음으로는 못 하겠다. 마인드 전환할 실험이 필요했다.
마침 텃밭 농장 단톡방에서 "알타리 무 5kg에 만원"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5kg이 얼마만큼의 분량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알타리 무 김치를 담아본 적이 없기에 더더욱 모르겠다. 다만 밭에서 바로 뽑아주는 김치재료가 1만 원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선다. 바빠서 텃밭도 둘러보지 않았기에 텃밭도 들를 겸 알타리 무를 주문한다. 퇴근하면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밭에서 뽑아두신다고 했다.
밭에서 알타리 무 한자루를 보고 기겁했다. 양이 많다. 5kg은 알타리 두 단이라는 사실을 밭에 가서야 깨달았다. 게다가 우리 집은 김치냉장고가 따로 없다. 지역에 지인 없이 딱 4인 우리 가족구성원만 의지하며 살아서 나눌 이웃도 없다. 큰일이다. 다행인 건 남편이 회식이라는 점이다. 째려봄은 피할 수 있다.
귀가전 마트에 들러 마른 표고버섯 2천 원대. 멸치액젓 3천 원대. 쪽파 5000원대를 구입했다. 표고는 냉장고에 잘 보관하면 앞으로 김치육수 낼 때 요긴하게 쓰이겠다. 쪽파는 한 줌 필요한데 어쩔 수 없이 한단을 구입했다. 잘 보이는 야채칸 앞쪽에 쪽파를 놓았다.
레시피는 요리 유튜버인 '함께해요 맛나 요리' 영상을 참고했다. 김치명인인 다른 유튜버 레시피도 잠깐 시청했지만 담담하게 설명하는 '함께해요 맛나 요리' 유튜버가 마음에 든다. 이메일 답변 기다리느라 에너지를 써서 여러 유튜브 속 레시피를 비교 검토할 마음도 사라졌다.
<채소 다듬기>
(내 노동력은 소중하기에) 알타리 무와 무청 사이를 댕강 잘라줬다. 원래는 그 사이를 칼로 긁어준다고 한다. No No 힘들다. 분명 시어머님께서도 댕강 자르라고 하셨을 것이다. 무청 꽁지도 한번 더 댕강 잘라주고 노란 겉잎은 골라냈다. 감자칼로 알타리의 겉면을 대충 깎는다. 칼로 굴곡진 부분을 2차로 대충 도려낸다. 무청은 칼질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이때만큼은 알타리 무 구입한 걸 후회했다.
<알타리 김치 재료>
알타리 2단(5kg)
쪽파 1줌
고춧가루 2컵 반
생강 1큰술
마늘 4큰술
액젓 1/2컵
새우젓 1/2컵
매실진액 1/2컵
찹쌀죽
육수 1컵
1단계 <알타리 무 절이기>
절임 소요시간 총 2시간
1) 대야에 무를 담고 설탕 1컵을 흩뿌린다. 30분 후에 소금 1컵 반을 추가하여 1시간 30분 이어 절인다.
2) 다른 대야에 무청을 넣고 소금 한 컵을 흩뿌린다.
3) 머그컵 500ml짜리로 물 3컵 정도 넣어준다.(1시간 30분 절여준다/ 중간에 한번 뒤집어준다.)
4) 무와 무청을 두 번 정도 깨끗하게 헹군다. 물기를 빼준다.
5) 무는 세로 2등분~4등분으로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라준다. 무청은 가지런히 놓고 3등분으로 잘라준다.
2단계 <김치 육수 내기>
1) 찬물에 대파 2개 흰 부분만 넣기
2) 양파 1개, 무 1/3개, 말린 표고 한 줌, 다시마 적당량
3) 팔팔 끓으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뭉근한 불에 육수를 끓인다.
4) 육수 2컵이 되었을 때 육수에 찹쌀가루 3스푼을 넣고 풀죽을 쑨다.
5) 풀 죽이 뜨거울 때 고춧가루 2컵 반을 넣고 잘 섞는다.
3단계 < 양념 만들기>
1) 육수+고춧가루 섞어놓은 그릇에 아래의 재료를 넣는다.
2) 다진 생강 1큰술(수제 생강청으로 대체), 마늘 4큰술, 멸치액젓 1/2컵, 매실청 1/2컵(대파청도 한국자 그냥 추가해 본다), 새우젓 1/2컵, 쪽파 한 줌, 소금 1큰술
3) 마지막으로 맛을 보고 고춧가루 1/2컵, 소금 한 스푼을 추가했다.
김치를 기도하듯 담그며 명상을 했다. 오전의 초조함과 그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던 순간의 기억도 희미해진 듯하다. 다시 뛰면 된다.
기말고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3 아들과 스터디 카페 명당자리 얻기 위해 출발해야겠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 정직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만족할만한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냥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