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배추, 무 수확

by 자급자족


하...


가을 내내 배추, 무 농사를 잘 지어놓았었다. 그런데 수확시기를 놓쳤다. 배추는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더 달콤해진다고 주워 들었었다. 무는 부직포를 2겹으로 씌워놓았으니, 그걸로 괜찮겠지 싶었다.


오늘 아침 출근 전, 집에서 8분 거리 텃밭에 들렀다. 배추는 건들면 부서질 정도로 얼어 있었고, 무는 부직포를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는 한번 얼면 활용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들었던 참이다.


나름 농약 대신 쓴 한약 뿌려가며 유기농으로 키운 배추인데, 얼었다. 내 마음도 얼었다. 그대로 두고 일단 출근했다.


퇴근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텃밭에 들러 배추를 수확했다. 칼로 밑동을 자르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배추와 무를 수확해 보는 것이 생애 처음이다.


배추와 무에서 단내가 났다. 결구가 되지 않아 수확을 늦춘 것인데, 배추 속이 차서 묵직하다. 얼지만 않았더라도 대풍작이었는데, 아쉽다.


미니 비닐하우스 속 적치마 상추, 봄동, 가랏나물이 한 곳에 다섯 개씩 새순이 났다. 새싹 하나나 둘만 남기고 어린 새싹을 솎아 수확했다. 야채를 헹궈 씻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식초물에 담가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해 뒀다.


아무래도 고추장, 김치, 계란과 섞어 야채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야겠다. 여린 야채를 다 소비하려면 한 20번은 비빔밥으로 식사해야 하나? 마트에 싱싱한 야채가 널렸지만, 초겨울에 어린 채소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텃밭에 도착하여 30분도 지나지 않아 어둑해진다. 밭에서 맞이하는 어둠은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항상 칠흑같이 어두워졌을 때 밭에서 귀가하시곤 했다. 잠깐이지만 엄마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대형 비닐에 배추와 무를 마구 담아왔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배추의 겉잎과 무의 노란 잎을 떼어 정리했다. 비닐 안에서만 배추와 무 겉잎 떼기 작업을 했다. 차창 밖으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배추가 조금 얼긴 했지만, 눈 오기 직전에 수확서 새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 서울 시어머니께 배추, 무를 모두 가져다 드릴 예정이어서, 깨끗하게 손질하고 싶었다. 주말에 시이모님들과 시판 절임배추로 김장김치를 담으신다고 한다. 내가 키운 배추와 무는 상품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 그걸 소비해 주실 분은 시어머님뿐이다.


아침에 시어머님과 통화하고, 저녁에도 통화했다. 나는 평소 무뚝뚝하고 말수가 없다. 어머님과 통화할 때만 푼수가 된다. 남편, 아들, 딸과 있었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면, 어머님은 세상 즐겁게 소리 내어 웃으신다. 새삼 여든이 넘으신 어머님과 일상을 얘기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배추, 무 재배 실습하며 깨달은 게 몇 가지 있다.


1. 배추는 결구가 되지 않는다고 속상해 말 것. 때 되면 다 결구가 됨. 인생하고 같음.

2. 배추는 여린 잎일 때 과감히 해충방제를 하는 것도 현명한 일임. 100% 친환경 농약을 내가 개발하지 못하는 이상.

3. 배추 모종 간 간격을 지그재그로 충분히 줄 것.

4. 아무래도 텃밭은 집 앞마당에 있다면 관리와 소비에 금상첨화일 것. 계란말이 만들 때 쪽파 몇 뿌리 뽑아 넣을 수 있고, 된장국 끓이다가 풋고추 따서 양념으로 쓸 수 있을 것임. 집 앞마당 텃밭은 냉장고 역할을 톡톡히 할 것임. 생각이 현실이 되기를 바람.

5. 사람에게도 다 때가 있듯, 작물의 수확에도 최적의 때가 있음.

6. 배추는 8월 말, 폭염에 심을 것.

7. 배추, 갓, 청갓, 쪽파, 대파, 무, 생강 등 수확 시기를 맞춰 겨울김장에 대비할 것.

8. 씨앗을 뿌리고 생장하는 최적의 기온이 있음. 그것을 거스르려 하면 힘들어짐. 자연의 순리에 따를 것.

9. 텃밭 작물은 일찍 수확해서 먹는 게 장땡. 관상용이 아님. 먼저 먹는 놈이 임자.

10. 배추는 내가 이제껏 키운 작물 중 가장 예민한 작물임.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