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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대표 Sep 27. 2019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되다.

"오빠, 나보고 어머님이래. 순간 깜짝 놀랐어."


첫째를 가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산부인과에 다녀온 아내가 내게 이야기해준 말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결혼?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해야 되지?

다시 태어나면, 결혼 같은 건 안할 거야.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결혼생활이라는 게 쉽지 않고, 많은 어려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는 말일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마음을 맞춰 살아간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확실히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삶도 달라지지만, 마음에서도 달라지는 게 결혼과 연애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할 때는 잠시만 떨어져있어도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애교도 부리고 앙증맞은 메세지도 보내게 되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신기하게도 결혼하면 그런 감정이 사라진다. 부족한 부분을 많이 보고,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일도 생기고,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는 일까지 생긴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지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다. 연애할 때 내가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원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러다 어느 순간, 부모가 된다.


슬픔과 기쁨은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슬픔,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찾아오는 기쁨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익어가고, 성장해간다. 이전에 몰랐던 마음들을 배우게 되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슬픔, 두려움, 그리고 기쁨과 소망을 함께 배우기도 한다. 부모라는 이름도 그런 게 아닐까.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것을, 나는 첫째 아들을 가지고 난 뒤에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가지지 못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대학생활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냐? 나는 좀 힘들던데.”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어느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는 대학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선배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형은 복학생인데, 축제 기간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더라. 하루는 같이 술을 한 잔 했는데,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도서관에 토익 공부하러 간다는거야. 참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저렇게 공부해서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 나도 복학하면 저렇게 공부만 하고, 도서관만 왔다갔다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대학생활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제 군대도 가야 되는데, 학점관리는 하나도 안 되어 있잖아. 대학 들어오면 되게 좋은 줄 알았는데, 별 것 없네. 너도 그렇지 않냐?”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5분 거리에 독서실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밥 한 숟갈 떠먹고 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그리고 밤 12시, 1시까지 공부했다. 남들 하는 것처럼 공부해서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이렇다 할 꿈이나 목표도 없이 의무감 때문에 성적에 맞춰 들어간 대학교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생각지 못한 즐거움들도 있었다. 대학생이 되니, 하루 용돈은 2천원에서 만원으로 올랐다. 시간도 많았다.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숙제로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었다. 레포트? 신입생이 레포트는 무슨. 학교 교정에 피어나는 벚꽃을 보면서 봄을 느끼는 것도 즐겁고 행복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캠퍼스의 낭만은 술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2개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학과에서는 대표를 맡았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있던 나는, 대학에서도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것저것 도전해본 것이라는 것을.


갑자기 고3이 되었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갑자기 대학생이 되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20살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세계 속에 들어온 나는 갑자기 찾아온 자유, 책임감,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학점관리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에 편입한 친구도 있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겨우 불붙여두었던 공부는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흥미가 사라졌다. 어떻게 시간관리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돈을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좁은 안동에서 아르바이트라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과외나 룸살롱 아르바이트를 기웃거려봤지만 재미 없었다. 과외를 받던 학생은 공부에 전혀 집중하지 않아서 두 달 만에 그만두었고, 룸살롱은 일이 너무 힘들었다. 공부는 흥미가 없고, 할 일은 없으니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일주일에 5일은 술을 마셨다. 한쪽 귀에는 귀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함부로 욕을 했고,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고 다녔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랐고,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하는지 몰랐다. 성인의 마음을 갖추지 못한 성인이 되어서,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사회생활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은 그런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된다는 점에서, 스무살과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된다는 것」은 닮은 점이 무척 많았다.


부모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구나, 갑자기 부모가 된다. 사랑의 결실을 맺고, 아이가 생긴다. 생명의 탄생은 무척 신비롭고도 아름답다. 아내가 첫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 나는 그 신비로움에 취해서 무척 들떠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마냥 들떠있기만 했다. 마치 대학 신입생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두려워하며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그때처럼, 점점 불러오는 아내의 배에 입을 갖다대고 옹알이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학생일 때, 사회생활을 할 때,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했다. 익숙한 것이 무척 싫어서, 늘 뭔가 톡톡 튀는 것을 찾아다녔다. 많은 실패를 했고,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많은 세계들을 만났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라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두려움이라는 것이 "앞으로 뭘 먹고 살 것인가, 노후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단순한 고민에서 시작된 두려움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으면 어떻할까 하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어떻하나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두려움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나를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늘 똑같은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첫째 아들을 가진 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어떤 부모가 정답인가?


그리고, 이내 질문 자체가 틀렸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정답인 부모가 어디 있는가? 인간의 지식과 이론만으로, 정답맞추기 식으로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것이라면, 세상에 부모가 될 만한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강의를 다니면서, 나는 수많은 학생들을 만났고, 또 부모님들을 만났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고방식으로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사는 분이 계셨던 반면에, 일상적인 대화도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생각이 주밀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누가 정답이고, 누가 틀린 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질문은 던져볼 수 있다.


성장하는 부모인가?

그렇지 않은 부모인가?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가치를 갖지만, 인간 그 자체는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자녀를 갖는 순간부터 아가씨에서 '어머님'이 되고, 총각에서 '아버님'이 된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느껴지는 그 깊은 감동을, 부모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름은 무척 아름답고 존귀한 이름이다.

반면에 부모는 만들어져야 하는 존재다. 지혜로운 마음, 지혜로운 생각, 지혜로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아내와 대화할 때, 지혜로운 마음이 아버지에게 무척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작은 오해가 크 상처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부모에게 연습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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