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 다작, 다상량

by 전대표

나는 매주 3편의 글을 쓴다. 1주일 동안 한 권의 책을 읽고 느낀 독후감 형식의 칼럼이 첫 번째, 교육관련 신문사에 보내는 교육칼럼이 두 번째, 공동저서 및 추후 출간될 소설, 수필, 회사 업무에 관련된 학문 서적 집필이 세 번째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작업이 아니다. 1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매주 1편씩 칼럼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 수필, 업무에 관련된 학문 서적은 회사 업무에 집중하면서 저녁마다 써야 하는 원고다.

굳이 사서 고생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의도적으로 생각하기와 글쓰기를 훈련하기 위함이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자기계발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성장해가는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고정적으로 칼럼을 쓰는 일, 책을 쓰는 일, 공동저서 집필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의지박약으로 인해 차기작 출간에 대한 계획을 잡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글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어느 순간 잘 쓴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잘 쓴 글은 보는 순간 '잘 쓴 글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내가 쓴 글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다 해서 글 쓰는 수준이라는 게 하루 이틀 사이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모든 작가의 숙명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글의 깊이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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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자체가 주는 여운을 생각해봤을 때, 소박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담담한 느낌을 담은 글이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 같다. 필체는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글의 종류가 소설이든, 논설문이든, 수필이든 상관없었다. 역사를 통해 검증받은 인문고전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포함하여 훌륭한 구성과 뛰어난 필력으로 이름을 알린 책들은 많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잘 쓴 글이라고 느낀 책이 하나 있는데, 혜곡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였다. 일점일획의 오류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훌륭한 필체로 구성된 책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웹서핑을 통해 알아낸 바, 최순우 선생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개성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개성 부립박물관에서 근무했다. 광복 후 고려청자를 토대로 글을 썼고, 이후 1984년 향년 68세를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6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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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thesis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주제에 대해 저자가 자신의 학문적 연구결과나 의견, 주장을 논리에 맞게 풀어써서 일관성 있고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쓴 글>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책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뒤이어 <관련된 전문가들에 의해서 반드시 통과의 절차와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독자 연구가 된다.>는 추가적인 의미가 붙는다. 가십거리 글과 논문이 다른 점이다. 최순우 선생이 개성 부립박물관에서 근무하던 20살 시절부터 글을 썼다고 가정했을 때, 48년 동안 매년 1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 달에 하나 꼴로 논문, 혹은 논문에 버금가는 글을 쓴 셈이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몰입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였던 故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카고대학 심리학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동네 술집에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때우는 것도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정말로 성숙해지려면 대화를 통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긴요한 것은 결국 고독을 견디는 능력, 아니, 고독을 즐기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몰입의 즐거움 61P,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해냄


앞서 책은 문서화한 상대와의 대화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봤을 때,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사고를 가진 상대는 주로 시공간의 제한이 없는 책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읽으나마나 한 책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책이야말로 참신한 사고를 소유하기 위하여 의도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지혜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곧 사색을 의미하는데, 사색은 글을 쓰는 행위와 연결이 되므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내면에 성숙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과 어느 정도는 합치되는 면이 있다. 좋은 글이 꼭 논문에 국한될 필요는 없으나 논문의 사전적 의미만을 생각해봤을 때, 또 6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순우 선생의 글이 훌륭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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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폭은 그의 ‘조울의 폭’에 의해 결정된다.”

흥미롭게 읽었던 어느 책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조울燥鬱이라는 단어가 있다. 답답함과 울창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쾌활한 기분과 울적한 기분이 교대로 나타나며 감정의 기복이 극심한 사람을 보고 ‘조울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 중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부류는 존재한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는 다르다. 감정의 기복을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끄는 그룹은 굉장히 위험하며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모든 리더에게는 그늘이 필요하다. 그가 가진 ‘조울의 폭’에 의해 마음의 그늘도 크기가 달라진다. 예외는 없다.


마음에 그늘이 없는 리더의 마음에서는 사람들이 쉼을 누리지 못한다. 조울의 진폭이 커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리더가 이끄는 기업조차 굉장한 타격을 받는다. 언론매체를 통해 마음에 그늘이 없는 리더들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지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경영전문가, CEO, 임원, 대표. 똑똑하고 스마트한 일꾼인 그들의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었으리라. 그러나 마음의 깊이는 명함의 직함을 따라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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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격은 시간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지혜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의 격은 다양한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나를 채찍질하는 과정, 타인을 배려하는 과정, 쓰라린 상처와 아픔을 곱씹을 수 있는 과정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지혜가 형성된다. 하나하나 쌓인 지혜가 깊은 마음의 그늘을 가진 리더를 만든다. 그 마음의 그늘이 훌륭한 글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다.


마음의 지경을 넓히는 과정을 통해 조울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리더의 겸손을 통해 사업이 성장하는 것처럼, 꾸준히 운동을 해온 사람의 근육과 민첩함이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발달하는 것처럼, 깊은 사유를 통해 얻은 결과물들을 끊임없이 머리 밖으로 배출해내는 과정을 겪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글을 잘 쓰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이는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그런 글을 엮은 책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들이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의도된 훈련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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