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하철에는 정원 초과가 없을까?
평일 오후 7시 8분, 왕십리역 경의·중앙선 플랫폼에 익숙한 안내음이 들려온다.
빠바라 바 빰~♪ 지금 용문, 용문 가는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는 것은 오후 7시, 왕십리에서 일이 끝나고, 회기역에 있는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차가 엄청 막혀서 40분 가까이 걸린다. 왕십리역에서 회기역까지 거리는 쾌나 먼 편인데, 철도(경원선)가 놓여 있어 이 두 역이 10분 내로 주파가 가능하다. 철도의 힘은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경의·중앙선은 나의 출·퇴근길을 30분가량 절약해 주는 좋은 친구이지만, 문제는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는 승객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냐면, 플랫폼에 사람으로 가득 찬다. 왕십리역이 2호선, 5호선, 경의·중앙선, 수인분당선 4개의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라 환승 승객도 많은 편인데, 섬식 승강장(상·하행이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태)이라 승·하차 자체가 쉽지 않다. 승·하차 승객들끼리 동선이 꼬이기 때문이다.
왕십리역을 들어서는 열차는 이미 포화상태이지만, 다른 열차로 환승하는 승객들이 빠져나온 여백에 승차 승객들이 빈틈없이 꽉 채우게 된다. 출발 자체가 쉽지 않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출·입문이 닫히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32개 (경의·중앙선은 8량) 문 중 하나라도 닫히지 않으면, 다시 출·입문이 열리게 되고, 이는 승·하차 연쇄 지연으로 이어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의·중앙선의 상습적인 연착에 많은 원인 중 하나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구간에는 경의·중앙선뿐만 아니라 많은 열차(KTX-이음, ITX-청춘 등)들이 선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재빠르게 역으로 향했다. 최대한 줄의 앞 쪽에 위치해야 끼여서 가더라도, 7시 8분 열차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열차를 놓치면 다음 열차는 1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그날은 무엇 때문인지, 유독 사람이 많았다. 과연 다 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늘 그랬듯이 그날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탔다. 출·입문 쪽에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낸 압력은 매일 반복되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제발 밀지 마세요..! 숨 막혀요.
그 소리가 들린 탓일까? 더 이상 새로운 압력은 느껴지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이때는 이태원 참사 사고가 있기 전이었는데,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압사'사고의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비단, 경의·중앙선뿐만이 아니다. 지옥철로 유명한 김포골드라인과 9호선 급행에 비하면, 여기는 양반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정원 초과'라는 안내음이 있고,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뒤늦게 발을 들인 사람들은 늘 그 안내음이 울리진 않을까? 두려워하며, 조심스레 탑승한다. 그런데, 지하철에는 정원초과라는 개념이 없는 듯하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한 량(운전실이 없는 중간차)의 정원은 160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출·퇴근길에도 보았듯이 정원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보고 있으면, 철도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애절하게 들린다.
다음 열차가 곧 도착하니,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철도기관사의 입장도 굉장히 난처할 것이다. 출입문은 닫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타고 있으니 말이다. (많으면 40개에 달하는 출입문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
출입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무리 올곧은 철도를 달린다고 해도, 열차도 코너를 돌거나 선로 상태가 좋지 못한 곳을 지날 때는 흔들림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한 명이라도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정말 큰 일이라도 날 것 같다. 나도 가끔 손잡이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쪽에 타게 되면, 오로지 균형감각으로만 버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다른 사람을 친 적도 있다.
다만, 신기한 점이 하나 있는데, 만원 지하철이라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덜 혼잡한 구역이 있다는 것이다. 덜 혼잡한 칸이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같은 칸이라도 다른 출입문이 상대적으로 덜 혼잡한 경우도 더러 볼 수 있다. 사람들로 꽉 차, 비어 있는 출입문을 찾아 이 칸 저 칸 움직이다 보면, 찾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의자가 있는 쪽이나 다른 칸으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가면,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출입문 근처의 밀집도가 굉장히 심하다. 조금만 안으로 가면 조금 여유로울 텐데, 사람들로 꽉 차 움직일 수 없을 때면, 아쉬움이 생길 때도 있다.
왕십리역에서 회기역으로 갈 때는 또 하나의 큰 관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청량리역의 하차 문제인데, 왕십리역과 회기역은 오른쪽 문이 열리고, 청량리역은 왼쪽 문이 열린다. 그래서, 왕십리역에서 마지막에 탑승한 사람들(오른쪽 문 근처)이 청량리역에 내리려고 할 때, 또 한 번의 전쟁이 이뤄진다.
마치, 학창 시절에 가지고 놀던 숫자퍼즐처럼, 한 사람이 움직여서 공간을 만들어줘야 그 사람이 지나갈 텐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결국, 그 좁은 공간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게 되고, 일시적으로 압력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에, 백팩을 뒤로 맨 사람들이 내리면서, 몸을 획 돌리기라도 하면, 가방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다가 내릴 때, 그냥 놓아버리면, 그 손잡이에 맞는 사람도 많다. 한 번이라도 맞아 본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알 것이다. 더 기분이 나쁜 것은 그 사람은 내가 맞았는지도 모르고, 사과도 없이 떠나간다는 점이다. 혼자서 기분을 삭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지하철을 좋아하는 나라고 해도, 만원 지하철은 정말 싫다. 많은 불쾌한 일들이 겪기 쉬운 환경이고,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러시 아워에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우리부터라도 지하철 내에서 작은 매너를 지켜볼 것을 제안한다.
1. 백팩은 앞으로 매거나 바닥에 내려두기
2. 손잡이를 놓을 때는 천천히 내려두기
3.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야 할 때는 무작정 밀기보다는 '잠시만요, 내릴게요'라고 한 마디 해주기
4. 출입문 근처보다 안쪽으로 이동해 주기
정말 사소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킨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진 지하철을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