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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yden Apr 16. 2024

[강남구청역 수인분당선] 강남역 가려고 하는데...

우리는 휴대폰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토요일 저녁, 상봉역에서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끝난 후,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수서, 그래서 상봉역에서 7호선을 타고, 강남구청역에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을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청담대교를 건너고, 청담역에 들어설 때쯤, 한 할아버지께서 한 승객에게 무엇인가 물어보고 있었다.


강남역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합니까?


한 승객이 할아버지께 경로를 알려주시는 것 같았다. 때마침, 열차는 '강남구청역'에 들어서서, 나는 하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들어오는 열차가 막차인 터라 부랴부랴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행선 5-3 앞에 섰다. 여기가 수서역 빠른 하차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어디선가 익숙한 얼굴이 옆에서 보였다. 아까 7호선에서 본 할아버지였다. 아마도 수인분당선을 타고, 선릉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강남으로 가시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계속 플랫폼에 있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시길래, 뭔가 문제가 있으신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혹시,, 도와드릴까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너무 고맙다며, 당신께서 처하신 상황을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고 집에 가는데, 휴대폰이 꺼졌지 뭐야... 집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하다.

나: 댁이 어디세요?

할아버지: 영통구야

나: 그럼, 이거 수인분당선 타고 쭉 가시면 되겠,, 아.. 근데 지금 막차가 죽전행이네요... 근데 아까 강남역으로 가시는 거 아니셨어요? 저도 아까 7호선에 있었거든요.

할아버지: 아, 강남역으로 가서 신분당선 타려고 했지, 근데 강남역 가려니까 이쪽으로 가라고 하더라고..

나: 아, 그러셨군요. 근데 신분당선 막차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때 나도 휴대폰이 꺼져서, 열차 시각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그래, 그래서 고민이야. 이거라도 타고, 죽전에서 택시 타고 가야지.

나는 가시는 길 외로우실 까봐, 말동무라도 되어드릴 겸 이야기를 걸었다. 때마침 나도 휴대폰이 꺼진 터라 심심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랑 나는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고, 우리는 "요즘 시대에 휴대폰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셨다. 그래서 대학생이고,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하니까,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주식 이야기를 꺼내셨다. 요즘 '전기차 배터리'가 대세라며, 앞으로 그쪽을 공부해 보라고 권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면, 메모하는 습관이 있으시다며, 나에게도 메모와 기록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나도 아이디어가 참 많은 편인데, 기록을 잘하지 않는 습관이 있었는데, 뜨끔하는 조언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전화를 해야 하는데, 휴대폰이 꺼져 난처해하셨다. 그러다 옆 자리에 앉은 승객에게 휴대폰을 빌리셔서 아내 분에게 전화를 거셨다. 이때부터였다. 지하철의 모든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한테 죽전역까지 데리러 와달라고 하셨는데, 할머니는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하셨고, 할아버지는 좀 데리러 와달라고 하시다가 결국 전화로 부부싸움을 하셨다. 부부/연인 간의 싸움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고 하던데, 이런 일이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정말 충격이었다.


전화를 끊고 선, 할아버지는 멋쩍어하시면서, 휴대폰 주인에게 휴대폰을 돌려드리고, 나에게 다시 말을 거셨다.


그냥 데리러 와주면 되지, 택시비도 아까운데...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핵심은 딱 하나였다.

'경청'과 '대화'의 필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과연 대화를 나누신 것일까? 특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데리러 와달라고 하시지 않고, "열차가 죽전까지만 간데..."라고 말을 흘리셨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눈치를 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택시 타고 오라고 하셨고, 할아버지는 서운한 마음을 '버럭 소리'로 표현을 하신 거였다.


만약,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구체적으로 원하시는 것을 알려주셨다면? 그리고, 자신의 입장만이 아닌, 할머니의 입장을 고려하는 분이셨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할아버지가 미웠다. 모두가 할아버지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만하다. 열차 내에서 통화하는 것 자체가 비매너 행위인데, 거기에 아주 큰 소리로 '버럭'지르셨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수서역에 도착해 나는 할아버지께 조심히 가시라고 말씀드리며,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곤,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있는가?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가?

즉각적으로 Yes라고 답하기 어려웠다. 나도 표면적으로는 '경청하는 척', '수용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어떻게 반박할지만 생각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좋다고 할 때도 여전히 나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대화를 통해 의견 차이를 좁히기보다는 나의 입장만을 고수하다가, 결국 힘을 얻지 못하면, 포기해 버렸다.


그 사람의 의견대로 진행하기로 했으면, 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 적이 많다. 늘 마음은 불편했고, 모든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


만약,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듣고, 수용하려고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졸업한 학교 선배가 학교에 특강을 와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났다.

잘 듣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경청'의 태도를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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