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통의 브라질 클래식 요약
2013년 브라질소셜클럽에서 처음 글을 쓸 때부터 항상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이 되려면 유럽의 예술은 공부하고 남미의 예술은 즐기면 그만이라는 수용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멕시코, 브라질과 같은 신대륙의 작곡가들은 이미 1800년대부터 유럽 중심주의로 인한 편견을 깨고자 "우리 고유의 것"을 찾으려는 꾸준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때로는 완전히 틀을 깬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작곡을 하는 등 많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것이 지금의 남아메리카 클래식입니다. 분명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피아졸라는 알겠는데 브라질하면 떠오르는 작곡가가 없다면 아래 작곡가들을 한번씩 들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빌라로부스는 브라질 화폐에 실렸을 정도로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는 1887년 히우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려고 공부를 했으나, 음악의 길을 가고자 학교를 뛰쳐나와 바이아부터 헤시피, 아마존을 탐험하며 광활한 자연의 소리와 리듬을 채집하였습니다. 이후 클래식 작곡을 배우러 콘서바토리에 들어갔지만 곧 딱딱한 교수법에 싫증을 느껴 그만두었고 자기의 방식대로 작곡을 계속하게 됩니다.
1922년 빌라로부스는 브라질에서 만났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벤스타인의 권유로 파리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고, 브라질의 새소리와 물소리, 민요에서 영감을 받은 곡들을 유럽의 공연장에 선보여 극찬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때 만났던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에게 빌라로부스가 써준 곡들은 부족했던 클래식 기타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빌라로부스의 곡들은 남미 클래식을 소개하는 공연이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연주되며, 클래식 기타리스트들에게 필수적인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서유럽의 클래식 문법에 흑인의 리듬과 원주민들의 감수성을 혼합한 그의 작곡은 훗날 조빔과 같은 모든 브라질 작곡가들에게 성공적인 세계화의 길을 터주었습니다.
관현악에 빌라로부스가 있다면 오페라에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고메스가 있습니다. 1836년 왕정 시대 캄피나스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으며,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황제 페드루 2세의 눈에 띄어 1864년 밀라노로 국비 유학을 떠납니다.
3년 만에 콘서바토리를 뛰어난 실력으로 졸업한 안토니우는 호세 지 알렌카르의 소설 "과라니"를 오페라화 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하게 되고, 마침내 1870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 "Il Guarany"가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성공하였습니다. 과라니족의 왕자와 포르투갈 귀족 여성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 오페라 과라니는 이어 유럽 각국의 수도와 히우 지 자네이루에서도 대성공을 거두며, 브라질에도 수준급의 오페라가 있음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1847년 장군의 집안에서 태어난 치키냐 곤자가는 히우 지 자네이루의 왕정 시대를 살며 수많은 작업물과 스캔들을 남긴 무척 흥미로운 여성 작곡가입니다. 여성의 권리가 무척 낮았던 시절 그녀는 첫 번째 남편에게 음악가로 살겠다고 통보했으며, 남편이 반대하자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치키냐가 활동하던 시대는 상류사회의 클래식 음악과 일반 대중의 가요가 엄격하게 구분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분리를 넘나들며 오페레타와 연극을 작곡하면서도, 대중음악이었던 마쉬시, 쇼루, 룬두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2,000곡 이상을 남겼습니다. 19세기 브라질 음악이 살롱음악에서 점차 길거리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치키냐와 같은 작곡가의 기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치키냐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어네스토 나자레스는 마찬가지로 살롱 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에서 현재 쇼루의 전신이 되는 "브라질리안 탱고"를 만들어 냈으며, 20세기 브라질 음악의 첫 토대라 볼 수 있는 작곡가입니다. 브라질리안 탱고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게 된 연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 서로 섞이면 출판이 안되었기 때문에 쇼루 작곡가들이 탱고라는 이름을 달고 작품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의 첫 히트작 Brejeiro는 100년이 넘은 지금도 쇼루 연주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으며 문명 6에서 브라질 테마곡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어네스토 나자레스의 작곡 방식은 유럽의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당시 히우에서 활발하게 연주되던 랙타임, 쌈바, 쇼루, 탱고 등 3개 이상의 문화권이 섞인 모습을 띠고 있어, 19세기말-20세기 초 브라질 사회의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히우 콘서바토리 출신 에그베르투 지스몬치는 파리의 전설적 음악교수 Nadia Boulanger를 사사하였으며, 브라질로 돌아와서는 한 달 동안 아마존 깊숙이 들어가 원주민들과 살기도 했습니다. ECM 레이블과의 첫 작품 Dança das Cabeças(1976)는 지스몬치가 직접 고안한 8현 기타와 피아노를 비롯한 소리의 향연을 펼치며,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이름은 아는데 어려워서 잘 안 듣는다... 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의 대표곡으로는 Palhaco, Maracatu, Lundu, Frevo, Agua e Vinho 등이 있으며 클래식과 재즈 양쪽에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습니다. 토속 민요에서 차용한 리듬과 브라질의 방대한 자연을 즉흥연주로 풀어내는 모습이 마치 현대의 빌라로부스를 연상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