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야한다
위 짤은 2015년 하스스톤을 주제로 한 만화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절묘하게 킹받는 대비 때문에 스포츠부터 시작해서 주식까지 9년째 쓰이고 있는 명작입니다. 사실 이것만큼 자본주의 사회를 강렬하게 표현한 짤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쎄빠지게 비바람 맞아가며 출퇴근해서 입에 풀칠하고 살지만 자본가는 예금, 국채 이자만 갖고도 소파에서 이빨 쑤시면서 살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투자에서만큼은 우리 모두가 딸깍충이 되는 것이 정신건강과 계좌에 모두 좋습니다.
사실 오늘날처럼 지하철에서 손가락 하나로 실시간 주식 매매가 가능한 날이 올 거라고 20, 30년 전만 해도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주식을 사고 싶으면 브로커리지에 전화를 걸어서 "몇 주 얼마에 살게요" 이렇게 주문해야 했고 계좌 상태를 알고 싶어도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잡지 같은 데 실린 주문서를 작성해서 편지로 보내면 주식이 증서 형태로 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대부분 사람들은 공격적인 매수, 매도가 거의 불가능했고 사놓고 까먹고 있다가 은퇴할 때 찾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브로커리지 중 하나인 뱅가드(Vanguard)를 써보면 느낌이 바로 오는데 계좌 현황도 실시간이 아니고 주식 사는 과정도 번거롭게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자주 사고 팔 거 아니라서 불편하게 둔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2010년대가 되자 0에 가까운 수수료를 제공하는 브로커리지들이 늘어났고 전산 기술의 발달로 개인 투자자도 증권사 부럽지 않은 주문 체결 속도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젊은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금융계에 전례 없는 전성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한편 개개인의 주식 보유기간은 급락하여, 예전에는 한번 사면 평균 2-5년씩 들고 있었지만 2021년 투자자들은 평균 10개월 만에 주식을 처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 신생 투자자들이 수익률이 좋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2001-2003, 2007-2009 불황기에 개인 투자자들이 머니마켓펀드(현금 보유)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을 볼 수 있는데 공포에 질려서 바닥을 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오히려 하락장이 끝나기 직전 현금보유량이 가장 높아지는 최악의 수를 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비싸게 사서 싸게 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회전율로 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오늘날 대부분 투자자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거래를 하고 있고 특히나 20대 남성의 회전율은 838%로 원금 대비 8배 넘게 단타를 쳤습니다. 회전율이 평균대비 높아질수록 거의 100% 확률로 수익률을 잃습니다. 밑의 통계에서도 보듯이 거래를 덜 한 60-70대 어머님들이 수익률이 4-5%대로 가장 좋았고 그 아들뻘인 20대가 -2.2%로 원금을 까먹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회전율이 높아질수록 수익률은 낮아졌다. 500~1000% 구간에서는 0.8%로 집계됐다. 이후에는 마이너스다. 1000~5000% 구간에서는 -13.8%, 5000% 이상에서는 -29.5%를 기록했다.
-아시아경제, 2021년
위 현상은 예전 글에서도 분석한 바 있습니다.
시카고 경영대에 Robert Vishny라는 교수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젊었을 때 숏펀드가 가지는 구조적 한계점을 분석하여 행동금융(Behavioral Finance)에 한 획을 그은 바 있으며 30년 넘게 기관투자자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2021년쯤 신나게 상승장에서 매매를 하고 있을 즈음 이 분이 남긴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번 돈을 다 날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현대 금융이 돈을 버는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여러분이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금융계가 돈을 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달으면 금융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 로버트 비시니 교수
교수님이니까 이 정도로 말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는 개, 돼지나 다름없는 행동을 한다는 팩폭이었습니다. 개, 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반대로 하면 됩니다.
이건 기업 경영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철학인데, 대부분 기업들이 단기 실적과 갖가지 지표의 늪에 빠져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우량 기업들은 가만히 앉아 돈을 법니다. 대표적인 예로 경쟁사들이 10원이라도 아끼려고 출혈 경쟁하는 동안 아마존은 프라임, 코스트코는 멤버십 제도를 활용해 엄청난 수의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강력한 현금흐름과 선순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결론:
1. 매매는 딸깍 한두 번으로 끝내야 한다.
2. 내가 시장보다 똑똑하다는 환상은 하루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