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가사번역
옛날 옛날에 브라질의 뻬르낭부꾸라는 촌동네 근처에서, 쥬제 도밍구스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고 어린 쥬제는 열 명이나 되는 형제를 가진 집안을 돕기 위해 일곱 살 때부터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모자에 팁을 받아 오고는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네의 호텔 연회에 와서 연주해 달라는 제의를 받게 됩니다. 연회장에 들어간 쥬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흥겹게 아코디언을 연주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한 남자가 쥬제를 찾아오더니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와 차비를 쥐어주면서 언제라도 히우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종이를 펴 본 쥬제는 그의 관객이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아코디어니스트, 루이스 공자가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쥬제는 열세 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메마른 농촌을 떠나 트럭을 타고 11일 만에 히우로 건너왔습니다. 히우에 도착한 쥬제에게 공자가는 새 아코디언을 건네주었고, 그렇게 뮤지션 도밍기뉴스의 커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브라질 아코디언의 거장, 도밍기뉴스가 전한 실화입니다. 1950년대는 브라질의 황금기였지만 개발에서 뒤처진 브라질 북동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빽빽한 트럭(Pau-de-Arara)을 타고 브라질리아, 히우, 상파울루로 떠났지만 도시에서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름없는 천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도밍기뉴스가 곡을 쓰고 질베르뚜 질이 가사를 붙인 "세르따네쥬의 슬픔"은 이러한 북동부 사람들의 슬픈 현실을 아름다운 멜로디에 얹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Por ser de lá
Do sertão, lá do cerrado
Lá do interior do mato
Da caatinga do roçado.
Eu quase não saio
Eu quase não tenho amigos
Eu quase que não consigo
Ficar na cidade sem viver contrariado.
왜냐면 난 저 멀리서 왔기 때문이죠
저 시골 촌동네에서
저 숲 안에서
카칭가(1)가 자라는 곳에서
난 거의 돌아다니지 않아요
난 거의 친구도 없죠
난 거의 이 도시에서
모순을 피해 살 수 없어요
Por ser de lá
Na certa por isso mesmo
Não gosto de cama mole
Não sei comer sem torresmo.
Eu quase não falo
Eu quase não sei de nada
Sou como rês desgarrada
Nessa multidão boiada caminhando a esmo.
왜냐면 난 저기서 왔기 때문이죠
그것만은 확실해요
난 푹신한 침대가 싫어요
토헤즈무(2) 없인 밥을 먹을 수도 없죠
난 거의 말이 없어요
난 거의 아무것도 몰라요
난 마치 길을 잃어버린 소 같아요
정처 없이 헤매는 이 소떼 같은 군중 속에서.
1. Caatinga: 브라질 북동부의 메마른 땅에서 자라는 식물입니다.
2. Torresmo: 돼지 껍데기를 튀긴 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