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가사번역
1964년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브라질 군부는 4년 후인 1968년, 헌법 개정안 AI-5를 발표해 국회를 해산하고 모든 집회 및 반정부 운동을 금지시켰으며, 대통령에게 제한 없는 권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아티스트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으나,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 아래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외국으로 추방되면서 브라질 근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가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쉬꾸 부아르끼 역시 비판적인 노래를 여럿 지은 것과 더불어, 1968년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것이 드러나 이탈리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쉬꾸 부아르끼의 노래 중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Samba de Orly(오를리 공항의 쌈바)는 로마에 있는 동안 그의 친구 Toquinho가 연주를 위해 방문했다가 쉬꾸에게 선물로 써 준 곡입니다. 따뜻한 브라질을 떠나 외국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슬픈 시기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자 선물한 곡이라고 합니다. 제목이 오를리인 이유는 브라질 사람들이 로마 공항보다 오를리 공항을 더 잘 알 것 같아서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Vai, meu irmão
Pega esse avião
Você tem razão de correr assim
Desse frio, mas beija
O meu Rio de Janeiro
Antes que um aventureiro
Lance mão
어서 가, 내 친구,
이 비행기를 타
넌 이렇게 떠나길 잘했어
이 추위*로부터, 하지만
나의 히우 지 자네이루에 키스해 줘
어떤 기회주의자가 가져가 버리기 전에
*브라질보다 이탈리아가 더 춥지만, 여기서 그가 가리키는 추위는 날씨가 아닙니다.
Pede perdão
Pela duração dessa temporada*
Mas não diga nada
Que me viu chorando
E pros da pesada
Diz que vou levando
Vê como é que anda
Aquela vida à toa
E se puder me manda
Uma notícia boa
이 기간 동안에
용서를 빌어,
하지만 내가 눈물 흘리는 걸 보았다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마,
강자들에게 가서 난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줘
가서 의미없는 삶이 어떻게 계속되는지 봐,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내게 좋은 소식을 좀 보내 줘
*이 소절이 "Pela omissão um tanto forçada" (조금은 강제로 생략된) 로 불려지는 버젼이 비니시우스의 원본입니다. 1970년 발표할 당시 검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덜 강렬한 이미지를 삭제해야만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