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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질소셜클럽 Apr 26. 2020

재즈계를 사로잡은 브라질 시골청년

Milton Nascimento의 음악세계

신이 목소리를 가졌다면, 밀통 나시멘투의 목소리일 것이다
(Elis Regina)


1. 들어가면서



표지부터가 뭔가 예사롭지 않은 밀통 나시멘투의 1972년 음반  <Clube da Esquina, 길모퉁이 클럽>은 실험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브라질 평론가들에게 죽기 전 꼭 들어봐야 할 명반으로 꼽힙니다. 브라질이 당시 군부독재라는 불안정한 시기였지만 “길모퉁이 클럽"의 성공은 바다를 건너가 미국에 있던 재즈 뮤지션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는 본인의 앨범 <Native Dancer>를 사실상 밀통 나시멘투로 채웠고, 브라질에 공연하러 가서는 밀통의 콘서트를 보려고 본인의 콘서트를 일찍 끝내기까지 했습니다.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는 앨범 제목인 Belo Horizonte의 길모퉁이에 성지순례(?)까지 하러 가서 비틀즈의 생가에 갔던 것만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심지어 "길모퉁이 클럽 음악의 탄생 배경을 알아야겠다"며 친구에게 밀통 나시멘투가 살았던 시골마을을 둘러보고 오게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Lyle Mays, Herbie Hancock, Esperanza Spalding 등 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밀통 나시멘투와 "길모퉁이 클럽"의 팬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허비 행콕과 함께한 사진


이만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실제 밀통 나시멘투의 음악에 대해서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로도 많은 자료가 나와있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워낙 인터뷰를 꺼리는 조용한 체질이어서이기도 하고, 동시대 Tropicalia, MPB에서 스타로 떠오른 Chico Buarque, Caetano Veloso에 비해서 대외적인 활동이 덜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밀통이 히우와 상파울루가 아닌, 미나스 제라이스라는 비교적 외곽지역 출신이어서 주목을 덜 받은 점도 있습니다. 그의 음악 역시 컨트리, 포크, 쌈바, 락, 클래식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무척 방대한 레퍼토리와 난해한 가사를 가지고 있어 쉽게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그런고로, 독자 요청에 의해 밀통 나시멘투의 성장과 음악 세계에 대해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2. 가장 브라질적인 것


밀통 나시멘투는 1942년 히우에서 태어났으나, 양부모를 따라 미나스 제라이스에 위치한 Tres Pontas로 아기 때 건너가 자랐습니다. 어린 밀통은 라디오 DJ를 하기도 하고, 청년기에는 주로 댄스 밴드를 따라다니며 재즈나 쌈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주했습니다. 흔히들 "길모퉁이 클럽" 으로 밀통이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묘사하지만, 실제 밀통의 커리어는 그 전부터 천천히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브라질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가요제같은 Festival do MPB가 인기였습니다. 밀통은 1966년 가요제에 첫 출연했고 1967년, 그가 작곡한 Travessia가 2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이 때부터 브라질 가요계는 밀통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이파네마의 소녀"로 대박을 터트린 프로듀서 Creed Taylor 역시 일찍 밀통의 잠재력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1969년 갓 창립한 CTI 레코드를 통해 밀통을 뉴욕으로 초청한 다음, Herbie Hancock, Hubert Laws, Eumir Deodato등 스타 라인업과 작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앨범은 예상만큼의 히트는 아니었으나, 재즈 뮤지션들에게 밀통을 확실하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Vera Cruz - Courage

<Courage>에 처음 실려 지금은 재즈 레퍼토리가 된 Vera Cruz는 밀통의 음악적 뿌리를 잘 보여줍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풍성한 고음의 보컬과 재즈적인 화성이 브라질 북동부 댄스음악인 Baiao 리듬과 섞이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느낌을 줍니다. 가사는 Vera Cruz라는 잃어버린 땅을 찾아 떠도는 추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Vera Cruz는 브라질 땅이 브라질이라고 불리기 전 붙여진 이름이므로, 브라질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는 이런 점에서 밀통의 음악을 두고 "밀통은 조빔과는 다르다... 그는 원주민과 아마존, 아프리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1960-70년대 도시화와 근대화가 가속화되면서, 브라질 내에서는 촌스럽다고 무시되던 지방 음악과 문화가 재평가되고 있었습니다. Edu Lobo, Dorival Caymmi, Luiz Gonzaga 등은 잃어버린 시골의 순수함을 농사꾼이나 어부의 목소리를 빌어 노래했습니다. 단 MPB(브라질 대중음악), 보사노바로 대표되는 주류 음악이 세련된 기타와 목소리로 시골을 언급하는 정도였다면, 밀통은 시골의 느낌과 음색을 여과없이 음악에 담았습니다.


Ponta de Areia - Minas

밀통의 대표곡 중 하나인 Ponta de Areia는 바이아와 미나스 제라이스를 잇는 열차노선이 중단되면서 버려진 기차역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가요와 조금 다르게, 밀통의 노래들은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이는 밀통이 어려서부터 영화음악을 좋아했고 작곡하기도 했던 배경과 연관이 있습니다. 민요처럼 들리는 짤막한 멜로디 위에 밀통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듯이 칠해 나갑니다. 노래의 시작에 들리는 불협화음의 색소폰과 드럼은 종착역이었던 Ponta de Areia에 멈춰서는 마지막 기관차를,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과 어린아이들의 합창은 이제는 조용해진 마을의 교회에서 들려오는 미사 소리를 연상케 합니다.


모자 쓴 늙은 철도원만이
그를 반기던 행복한 사람들을 기억하네
증기 기관차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아
아가씨들, 꽃들, 창문과 베란다에게


밀통은 그의 첫 앨범에서 "나는 카우보이에요, 나는 금광에서 왔어요, 나는 세계이고, 나는 미나스 제라이스에요" 라고 노래했는데, 음악을 통해 촌동네인 Tres Pontas와 Ponta de Areia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그가 목표했던 포부를 이룬 셈입니다.


1980년도에 촬영된, 버려진 Ponta de Areia 종착역




3. 길모퉁이 클럽


1972년 밀통의 커리어를 바꿔놓은 <길모퉁이 클럽>은 밀통 본인과 레코드사에게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밀통의 1-3집 실적은 부진한 편이었고, 1970년대 초는 브라질에 락을 비롯한 외국 음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음은 잼 세션처럼 매우 자유롭게 진행되었는데, 오히려 이 점이 앨범에 독창성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밀통과 Lo Borges는 각각 12곡, 8곡을 쓰고 그 외 미나스에서 데려온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편곡과 연주에 기여했으며, 뚜렷한 마스터플랜이 없이 즉흥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녹음했습니다.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Toninho Horta가 회고하길, 일어나 보면 녹음해야 될 친구들이 맥주를 마시러 가고 없어서, 그냥 남은 뮤지션들을 데리고 녹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길모퉁이 친구들


이 실험적인 프로젝트는 비록 발표 당시에는 어설픈 외국 음악 흉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브라질 젊은층 사이에서 점차 인기를 끌기 시작하다가 차트 8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쌈바부터 시작해서 락, 싸이키델릭, 스페인 음악, 발라드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작곡과 약을 빤 듯한 가사의 조합은 음악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 앨범의 정체가 대체 뭐지?' 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Nada Sera Como Antes - Clube da Esquina


Clube da Esquina는 워낙 여러 명이 합작한 프로젝트이고 일반 앨범보다 2배 긴 더블로 발매되었기 때문에, 일일이 글로 설명하기는 공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유투브에 앨범 전체가 올라와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을 장식한 Tudo O Que Voce Podia Ser, 전통 민요를 연상시키는 Cravo e Canela, 몽환적인 느낌의 O Trem Azul, 그리고 링크한 Nada Sera Como Antes('그 무엇도 예전과 같지 않으리' - 저항가요로 보기도 합니다) 를 좋아합니다.


밀통과 그의 미나스 친구들은 브라질 음악의 꽃인 떼창과 다양한 타악기를 아낌없이 활용해, 브라질이라는 뿌리에 영국과 미국의 가지를 붙인 독특한 앨범을 만들어내었고 당시 월드뮤직으로 눈을 돌리고 있던 재즈 뮤지션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특히 "길모퉁이 클럽"에 큰 감명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는 1974년 밀통이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고(주최측은 그의 장르를 "밀통"이라고 표기했다고 합니다) 1975년 <Native Dancer>를 밀통의 곡으로 채웠습니다. 이 앨범이 미국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밀통은 사실상 재즈 거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세련된 화성과 이국적인 전통 리듬은 리얼북에 수록되어 지금도 재즈클럽에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습니다.




4. 저항의 음악


흔히 브라질 저항가요라고 하면 트로피칼리아와 Chico Buarque, Caetano Veloso, Gilberto Gil 삼형제를 떠올리지만, 밀통 나시멘투 역시 저항가요를 썼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1973년작 Milagre dos Peixes에 수록될 예정이었던 세 곡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대폭 수정된 채로 발매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뜻하는 타이틀곡에서 밀통은 "죽음, 죽음, 사랑의 죽음... 그들은 꽃이 피고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네, 나는 그저 이 고통에 대해 말하는 또 한 명의 사람일 뿐" 이라며 군사정권 치하의 고통을 성경 속에 숨겨서 표현했습니다. (Chico Buarque 역시 Calice라는 성경을 이용한 저항가요를 쓴 바 있습니다) 검열관에게 가사를 모두 뺏긴 밀통은 그렇다면 악기로 저항을 나타내자고 밴드에게 말하고는 베링바우와 같은 전통 타악기를 공격적으로 동원했습니다.


Os Escravos de Jo - Milagre dos Peixes

한 예로 "욥의 노예들" 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가사가 모두 검열되었습니다. 당시 검열관이 쓴 노트를 보면 "다들 나아질 거라고들 말하네,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으니까" 같은 부분(첫 단락)이 심기를 건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밀통은 대신 흑인 노예들의 전통 리듬이었던 Jongo와 카포에라 악기인 베링바우를 가지고, 독재에 대한 저항을 노예들의 투쟁으로 돌려서 표현했습니다.


VETADO - 불합격


밀통은 또한 Milagre dos Peixes를 발매하면서, 가사가 없는 곡에도 작사가의 이름을 집어넣고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구매자들에게 검열의 현장을 똑똑히 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Milagre dos Peixes는 곧 학생들에게 저항의 표시가 되었으며, 전경들이 밀통의 콘서트장 앞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밀통이 TV나 잡지에 나와 정치적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평소보다 공격적인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았습니다.




5. 맺으면서


1970년대 브라질과 미국의 재즈 씬 둘 다에서 이만한 성공을 거둔 가수는 아마 그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유일할 것입니다. 둘 다 자연에 음악의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같지만, 조빔이 보사노바로 대표되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었다면, 밀통은 클래식이나 영화음악을 바탕으로 한 오케스트라적인 음악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밀통의 음악은 또한 마라카투, 바이엉, 카포에라, 구전민요 같은 브라질 고유의 소리를 적극 사용하면서, 거기에 합창과 웅장한 현악 섹션, 리버브로 "소리의 장벽(Wall of sound)" 을 쌓아 듣는 사람을 압도되게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조빔과 정반대에 있는 맥시멀리스트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Aqui, Oh - Toninho Horta가 연주한 미나스 제라이스에 바치는 찬가입니다.


"길모퉁이 클럽"의 멤버들 중 일부는 최근까지도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Toninho Horta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되어 여전히 활발하게 공연 중이고, Lo Borges와 Beto Guedes도 꾸준히 앨범을 냈습니다. "Travessia"의 작사가 Fernando Brant는 아쉽게도 200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다시 한번 뭉칠 수 있다면 엄청난 사건이 되겠지만, Lo Borges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그런 계획은 아직 없으나 밀통이 제안해 온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끝으로... "길모퉁이 클럽" 커버를 장식했던 동네 꼬마 둘은 2012년이 되어서야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출처: Milton Nascimento and the Clube da Esquina: Popular Music, Politics, and Fraternity During Brazil's Military Dictatorship(1964-85) - Holly Holmes (박사논문)


The Brazilian Sound - Chris McGowan, Ricardo Pessan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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