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강진에서 열흘째 되는 날이다. 24년 인생 중 가장 완연한 여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논, 밭, 산, 들, 하루 종일 파아란 기운으로 눈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리듬감 있게 내리는 장맛비에 흠뻑 젖어도 보았다. 비가 갠 뒤에는 진하게 올라오는 흙내음에 한껏 취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풀벌레 소리, 매미소리, 새소리,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소리로 귀가 적막할 틈이 없었다. 매일 동이 틀 무렵 닭 우는 소리에 잠깐 의식이 들기도 했다. 냉장고에는 밭에서 갓 수확한 여름 작물들이 떨어질 날이 없었고 덕분에 식탁 위는 매일 싱그러웠다. 여름 속에서 온전히 감사하고 행복했다.
행복을 나누면 그 기쁨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행복을 나눌 사람이 곁에 있어 좋았다. 그러나 그 행복이 언제나 공유되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라’를 마음 속에서 되뇌였음에도 불편한 감정을 떨쳐버릴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문득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쓰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까지는 스스로가 뚜렷한 경계가 없어 차이에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게도 기호가 있고 그것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이 좋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좋다. 행동하는 사람이 좋다. 긍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주변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순간을 향유하는 사람이 좋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좋다. 건강한 사람이 좋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좋다. 편견 없이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사람이 좋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고 싶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긴긴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사소한 것에 참을 수 없을 만큼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감정이 누그러지면 다시 얼굴을 마주보고 웃는다. 갑자기 함께여서 더 좋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호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서서히 느껴가는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배려하고 공유하며 함께라 더욱 좋은 순간들로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