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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hat Oct 20. 2020

러닝

"나만의 오롯한 아침이었다"

마치 수증기 입자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룬 풍경 같았다.

 아름다운 곳에서의 아침 러닝, 내게는 하나의 로망이었다. 그렇다고 러닝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상으로는 아주 가볍게 뛸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뛰어보면 몸의 구석구석을 적당한 비중과 리듬으로 옮기는 것이 꽤 힘들다. 그래서 달리는 것이 너무 의지적인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의 이주 간의 아침 러닝은 해볼 만할 것 같았다.

 도암에 도착한 이튿 날, 새벽에 들려오던 닭 울음소리 때문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누운 채로 지도를 켰다. 집 주변에 달려가고 싶은 곳… 바다로 길게 뻗은 해안도로까지 가보기로 했다. 대문을 나서자 백색 하늘 아래 마을의 거리가 환하게 펼쳐졌다. 큰 길을 지나 낮은 지붕들조차 드문드문해지고 길이 한 곳을 향할 때쯤 나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몸은 무거웠고 뛸 때마다 느껴지는 가방도 불편했다. 그러면 걸었다. 뛰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눈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다보니 무거움과 불편함에 점차 적응이 되었고, 때때로 잊혀지기도 했다. 얼마나 온 지도 잊은 채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하얀 안개가 가득 찬 해안가에 이르렀다. 마치 수증기 입자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룬 풍경 같았다. 나를 감싸는 그 축축하고 묵직한 공기가 불쾌하기보다는 오히려 온몸으로 풍경에 닿는 것 같아 좋았다. 나만의 오롯한 아침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오늘 하루가 벌써 감사했고 기대됐다.

온몸으로 풍경에 닿는 것 같아

 그 기분에 이끌려 이주 간 아침마다 도암의 곳곳을 달렸다. 떠날 즈음엔 도암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장소를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것은 참 풍요로운 일이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더 많은 것을 담고 더 많은 것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주동안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고 그 리듬도 익숙해졌다. 매일 아침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내게 맞는 러닝 페이스를 느꼈다.

 도암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러닝은 끝이려나. 하지만 그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주변의 풍경은 바뀌었지만 몸은 그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 내 몸에게 귀기울이고 내가 있는 곳에 조금씩 뿌리내릴 수 있는 이 운동과 더 친해지고 싶다. 러닝이 조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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