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오롯한 아침이었다"
아름다운 곳에서의 아침 러닝, 내게는 하나의 로망이었다. 그렇다고 러닝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상으로는 아주 가볍게 뛸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뛰어보면 몸의 구석구석을 적당한 비중과 리듬으로 옮기는 것이 꽤 힘들다. 그래서 달리는 것이 너무 의지적인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의 이주 간의 아침 러닝은 해볼 만할 것 같았다.
도암에 도착한 이튿 날, 새벽에 들려오던 닭 울음소리 때문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누운 채로 지도를 켰다. 집 주변에 달려가고 싶은 곳… 바다로 길게 뻗은 해안도로까지 가보기로 했다. 대문을 나서자 백색 하늘 아래 마을의 거리가 환하게 펼쳐졌다. 큰 길을 지나 낮은 지붕들조차 드문드문해지고 길이 한 곳을 향할 때쯤 나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몸은 무거웠고 뛸 때마다 느껴지는 가방도 불편했다. 그러면 걸었다. 뛰다가 걷기를 반복하며 눈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다보니 무거움과 불편함에 점차 적응이 되었고, 때때로 잊혀지기도 했다. 얼마나 온 지도 잊은 채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하얀 안개가 가득 찬 해안가에 이르렀다. 마치 수증기 입자 하나하나가 모여서 이룬 풍경 같았다. 나를 감싸는 그 축축하고 묵직한 공기가 불쾌하기보다는 오히려 온몸으로 풍경에 닿는 것 같아 좋았다. 나만의 오롯한 아침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오늘 하루가 벌써 감사했고 기대됐다.
그 기분에 이끌려 이주 간 아침마다 도암의 곳곳을 달렸다. 떠날 즈음엔 도암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장소를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것은 참 풍요로운 일이다.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더 많은 것을 담고 더 많은 것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주동안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졌고 그 리듬도 익숙해졌다. 매일 아침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내게 맞는 러닝 페이스를 느꼈다.
도암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러닝은 끝이려나. 하지만 그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주변의 풍경은 바뀌었지만 몸은 그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 내 몸에게 귀기울이고 내가 있는 곳에 조금씩 뿌리내릴 수 있는 이 운동과 더 친해지고 싶다. 러닝이 조금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