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커피에 관한 에세이 04
어디 앙버터가 가장 맛있었나요?”
빵스타그램, 빵을 주제로 SNS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하나를 뽑아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뽑을 수 있는 질문이 바로 ‘앙버터 맛집 추천’이다. 라이브 방송에서도 그렇고, 개인적인 메시지를 통해서도 정말 많았던 질문. 그때마다 레퍼토리처럼 빵집 리스트가 주르륵 나왔었고, 주변 분들마저 다 외워버릴 정도였었다. 물론 이 글은 앙버터 맛집을 소개하려고 적은 것은 아니니 다른 기대를 품지는 말자.
혹시나 앙버터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어떤 빵인지 말해보자면 빵(주로 바게트나 치아바타) 안에 앙(팥앙금)과 버터를 채워 넣은 조합을 바로 앙버터라고 한다. 팥앙금을 앙이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가 일본에서 뻗어 나왔음을 알 수가 있는 빵.
버터를 생으로 먹어?”
내가 처음 앙버터를 접했을 때, 몇 년 전 그때만 해도 사람들의 인식은 그랬다. 크림도 아니고 버터를 생으로 먹는다니. ‘느끼하고 니글니글할 게 분명해.’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사진으로 볼 때 앙버터는 정말 먹음직해 보였다. 빵 사이에 팥앙금도 가득 들어가 있었고, 노란 버터까지 두껍게(당시로서는) 썰어서 올리니 단면 자체가 예쁘고 맛있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앵커 버터니, 고메 버터니 하는 유럽산 버터를 사용한다는 말에 뭔지는 몰라도 일단 혹 할 수밖에 없던 것도 있었고.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합정과 상수역의 사이 그 중간쯤에 위치한 B 빵집. 우리나라에 앙버터를 처음 들여온 곳이라는 그곳에서 앙버터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반지하의 빵집, 우드톤으로 이루어진 조금은 어둑한 공간에서, 앙버터를 만들기 위해 버터를 썰고 계시던 직원분의 모습은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을 받아 묘하게 이국적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아, 내가 드디어 유럽식 빵을 먹어보는구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앙버터가 유럽의 빵인 줄만 알았으니까 그때는. 그리고 팥빵, 고로케같은 익숙한 종류의 빵만 사 먹던 내겐 이 가게의 다른 빵들 역시도 다 고급지고, 이국적으로 다가왔었다.
완전 빠작해, 입천장 까지겠어”
빵이 빠작했다. 강하게 구운 흔적이 묻어난다. 바삭하면서도 거친 식감. 당시에도 지금도 그렇지만, ‘입천장 까지는 빵’이라는 말이 앙버터 하면 콤비처럼 붙어 다녔다. 원래의 앙버터는 단순하게 모닝빵에 팥앙금과 버터를 넣은 심플한 조합일 뿐이었지만,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빵도, 들어가는 버터와 팥앙금도 전부 바뀌었다. 특히 빵은 180도 달라졌는데, 부드러운 빵 위주가 많은 일본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바게트나 강하게 구워낸 치아바타를 많이 선호했다. 아무래도 식감적으로나 맛적으로나 풍미가 강한 빵을 조합하는 것이 버터의 느끼함이나 팥앙금의 단맛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호밀 90프로가 넘어가는 빵을 베이스로 쓴 P 빵집의 앙버터를 인생 앙버터로 꼽는 분들이 많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당연히 가격도 올라갔다. 당시에도 가격대가 있는 빵이었다. 유럽의 버터를 쓰기 시작하고 국내산 팥앙금을 사용하니 가격이 안 오를 수가 없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앙버터는 고급 빵에 속했다. 지금도 5천 원, 6천 원이 넘어가는 앙버터는 흔하게 볼 수가 있다. 가게들끼리 경쟁이 붙다 보니 앞다투어 팥앙금과 버터를 더 많이, 두껍게 올려대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가격은 더 상승했다.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는 점점 치킨게임화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개인 빵집들에선 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개성을 앙버터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변화는 당연히 팥앙금, 버터 같은 속재료에서부터 시작됐다. 물론 팥앙금이야 수제로 만드시는 곳들은 처음부터 시판 앙금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팥빵에서도 느껴지지만 은근히 팥앙금이란 게 변주를 많이 줄 수가 있는 식재료다. 당도도 제각각이고, 통팥을 그대로 살리느냐, 곱게 으깨어 내느냐 또는 시나몬이나 견과류 같은 재료들을 첨가하느냐 등 가게마다 맛을 내는 법이 달랐다.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팥앙금 말고 커피 앙금, 바나나 앙금, 고구마 앙금 등을 사용하는 앙버터 전문점까지도 생겨났을 정도. 버터는 프랑스의 엘엔비르 고메 버터가 유행하면서 사실 거의 그쪽으로 통일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앵커 버터(물론 그래도 우수한 품질이다.)를 사용하거나 조금 더 가격대가 있는 이즈니 AOP 버터, 보르디에 버터 등을 사용하는 베이커리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프랑스 사람은 정작 앙버터를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자기 나라에선 버터를 이렇게 생으로 두껍게 썰어 먹지 않는다면서...
잠깐만 뭐? 앙버떡??”
그리고 요즘, 최근에 보이는 앙버터의 변신은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빵을 대신해 스콘 사이에 팥앙금과 버터를 끼워 넣는 곳이 생기더니, 마카롱의 꼬끄, 다쿠아즈 사이에도 침투를 해버렸다. 그리고 심지어 케이크도 나왔다. 앙버터 케이크라니... 그간 보았던 앙버터 중에 가장 재밌었고, 창의적이다 싶었던 앙버터는 시판 빠다코코넛 과자 사이에 팥앙금과 버터를 끼워 넣은 성수동 C 카페의 ‘앙빠’와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앙버터 모나카’ 그리고 백설기에 팥앙금과 버터를 조합해버린 사당동 남성 시장 J 떡집의 ‘앙버떡’이었다. 난 솔직히 이 쯤되면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또 은근히 맛있다는데서 참 뭐랄까 그저 웃음만 나왔었다.
가장 최근에 먹은 앙버터는 팥앙금에 버터뿐만 아니라, 고구마, 블루베리, 말차, 단호박, 흑임자 크림치즈 등을 더한 빵이었다. 이 쯤되면 팥앙금과 버터는 곁다리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변신도 변신이지만 대중적으로 참 많이 퍼졌다. 얼마 전에는 편의점에서도 출시가 되었고, 이마트에서도 보일 정도니 말이다. 이젠 어느 빵집을 가더라도 당연하게 볼 수 있게 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난 아직도 이 조합이 왜 그렇게 유행을 타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버터의 부드럽고 풍부한 유제품 맛과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팥앙금의 조합이 구수한 빵을 만난 그 맛이야 당연히 대중적으로도 좋아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이젠 그만큼 버터와 빵의 조합에 사람들이 익숙해진 건가 싶기도 했다. 물론 몇몇 앙버터 변형품들은 유행에 급급해 만들었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그런 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앙버터가 대중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일터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버터라는 음식이 생소해 마가린에 더 익숙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아마도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세대를 이루게 되나 보다.
얼마 전 방송을 하는데 국진이빵(빵집에서 남은 빵을 뭉쳐 만든 소소한 간식거리 같은 제품)을 모른다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나는 빵집에 들를 때마다 요 빵을 한 두 개씩 사 오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걸 아는 사람이 더 적은 모양이다. 요즘의 젊은 세대가 자라고 나면 앙버터는 내가 국진이 빵을 먹던 것과 같은 추억의 간식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앙버터를 그렇게 많이 사 먹는 편은 아닙니다. 뭐랄까 저는 미각에 아주 예민한 사람은 아니라서 들어간 재료의 맛을 하나하나 느껴보려면 혼자 세심하게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먹어야 하거든요. 물론 저도 처음 접했을 때는 정말 많이 먹었으니 할 말은 못되지만 말입니다. 사실 빠작한 빵을 선호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씹을 때 나는 바사삭 거리는 소리도 한 몫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ASMR이 유행하는 시대잖아요.
유독 사진이 많이 들어간 이번 편, 이것도 그나마 추려서 골라낸 것들이네요. 그만큼 앙버터가 유행은 유행이었나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앙버터 맛집은 말이죠... 에 여기까지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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