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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Jan 04. 2023

사실 새우는 고래 싸움을 …

카페에 가야겠습니다.


주말까지 집에서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카페에서 샌드위치랑 커피 마시면서 일할 생각을 하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는걸요.

그중에서도 제일 설레는 일은 카페 고르기.


테라스 카페를 가고 싶었지만 콘센트가 필요했기 때문에 3층으로 이루어진 큰 카페에 가기로 했습니다. 대학생 때 공부하러 가끔 갔는데 직장인이 되어 몇 년 만에 가는 카페라 그런지 기분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창가에 앉을까 했지만 제 발걸음은 익숙하게도 4년 전에 늘 앉던 자리로 향했습니다. 이 자리로 말할 것 같으면 카페의 사각지대라서 백색소음이 적당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으며 의자가 편해서 제가 제일 애정하던 자리입니다.


은은한 단 맛을 가진 단호박 샌드위치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노트북을 폈는데, 뭔가 등골이 싸한 거예요.

콘센트를 두고 왔나? 아니. 설마 핸드폰 배터리가 없나? 그것도 아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중, 옆 사람에게 눈이 닿았습니다.


여기구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커플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게 단단히 싸운 것 같았어요.

이미 전반전은 끝난 것 같고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달까요? 그걸 대체 어떻게 아냐고 의아해하실 수 있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라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검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어요. 아마 직원도 CCTV로 엿보고 있었을걸요?


하필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저는 오늘 일은 글렀다는 생각과 함께…


매우 들떠버렸습니다.


등이 터질 걸 알면서도 고래 싸움을 관전하는 새우의 마음에 공감하며 숨을 죽였어요.


‘후반전 시작하기 전에 샌드위치가 도착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샌드위치 도착.

동시에 후반전도 시작. 완벽한 타이밍.


“외로워”


짧은 한마디는 그들이 했을 수많은 싸움을 투영했습니다. 헤어지는 중이군요.

상대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다 먹고 남은 일을 끝낼 때까지 그 둘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사색에 빠질 수밖에 없는 노을 아래,


사랑을 하는 것과 사랑을 주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실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동태예요. 이미 사랑에 빠진 이상 내가 헤엄쳐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폭 빠져만 있으면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은 쉬운 가요? 심장에 사랑의 화살을 쏴서 내리꽂아야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대충 그 사람 근처에 사랑을 던져두면 날쌔게 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랑 중에 하나도 잘못된 사랑이 없고 하나도 부족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겠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어떻게 받는 사람인지 알아야 하고, 당신이 사랑을 잘 받을 수 있게 이리 날리고 저리 던지고 내리꽂아봐야 하니까요.


‘알잖아, 나 표현 못하는 거.‘의 마음은 사랑을 주지 않습니다.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자격을 뺏기게 됩니다. 단 방향의 사랑은 지속될 수 없어요.


“나는 사랑하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고 늘 서운해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


억울한 그대, 속상한 그대, 갑갑한 그대.

그대가 사랑을 하고, 받는 동안 얼마만큼의 사랑을 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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