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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Jan 06. 2023

중학생이 채식한 이야기

1년 정도 채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볼 때문이었습니다.

ball? 아니요. 뺨 말이에요. 귀여운 볼따구!


가족이 같이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갔는데 그때 '뽈살'이라는 것을 처음 먹게 되었어요. 놀라운 사실은 뽈살이 정말 돼지 볼의 살이라는 것이었죠.

그 귀여운 볼따구, 귀여운 볼따구를 제가 잘근잘근 씹어먹는 중이라고요?

갑자기 저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돼지의 볼을 뜯어먹는 야만인 같았습니다. 과연 돼지는 저에게 볼을 뜯길 줄 알고 태어났을까요? 혹시 돼지가


"내 돈생의 종착점은 네게 먹히는 것이란다. 내 볼 쫀득하고 맛있으니까 한번 숯불에 구워 먹어 봐"


라고 했다면, 원만하게 합의한 것으로 알고 수긍하겠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는 돼지와의 대화에 실패했고, 그 이후로 고기를 씹을 때마다 제 잔인함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제 입 안은 이미 죄책감으로 가득해서 더이상 고기를 넣을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채식을 당한 것 일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현실적인 문제가 떠오릅니다. 급식을 먹는 학생이 어떻게 채식을 했을까요?

저도 채식을 하기 전 까지는 몰랐는데 급식의 메뉴 하나는 꼭 채소가 나오고 있었어요. 고기 먹기에 바빠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죠. 채소의 종류는 시금치 무침 이라든가, 가지볶음 등이 있었습니다. 가끔 운이 나쁘면 감자채볶음이 나왔어요. 왜 운이 나쁘게요? 그것은 바로 감자채볶음은 햄과 같이 나오기 때문이랍니다. 먹어보려고 해도 햄 냄새가 제가 죽여온 돼지들을 떠오르게 해서 먹지 못했어요.


채식에도 단계가 있는데, 저는 비건이었습니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 우유와 달걀, 생선까지 먹지 않아요. 사실 멸치는 마치 대량학살을 하는 것 같아서 지금도 못 먹습니다. 그렇게 1년을 밥과 채소만 먹었어요.

저의 소울푸드는 무생채무침, 조미김, 콩나물 볶음!

한 번은 비빔밥은 먹는데 고기 맛이 나서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고기고추장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로 비빔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엄마는 단백질을 먹지 않으면 건강에 해롭다며 저를 혼내고 설득하셨는데, 저는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사춘기 중학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해요. 하하. 내 딸이 한창 클 시기에 밥과 채소만 먹으면 얼마나 속이 터질꼬.


그렇게 부모님 말도 듣지 않고 채식을 고집하다가 그만두게 된 이유는 한 친구로부터 시작됩니다.


친했던 친구와 크게 싸웠습니다. 우리는 성숙하지 않았고, 많은 시간을 함께한 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거든요. 정말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싸운 이후에 매일 밤을 울며 보냈습니다. 밥을 같이 먹던 친구였는데 이제 혼자 먹어야 했고, 그게 부끄러워서 점심을 굶곤 했습니다. 그때 옆 반의 또 다른 친구가 제가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을 알고는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한 것이에요. 같이 선생님 휴게실에 몰래 들어가서 먹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혼나기도 하고, 저녁에 같이 자전거를 타다가 친구 집에서 치킨을 먹기도 했던 기억은 지금까지 소중하고 행복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때 친구가 도시락을 싸주면 고마운 마음에 싹싹 긁어먹었어요. 고기가 있든 달걀이 있든, 멸치도 먹었어요.

다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고기를 아주 잘 먹고 있답니다. 고기 없이는 못 살아요. 돼지한테 미안하지 않냐며 중학교 3학년의 제가 소리치긴 하지만, 맛있는 걸 어떡해요.


저는 그 친구가 뭉클합니다. 애틋합니다. 그립습니다.

다른 고등학교를 간 후 서서히 연락이 끊기게 되었는데, 이를 핑계로 아직까지도 보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연락을 다시 하는 게 겁이 나기도 해요.

저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희 어머니가 우리 어른이 되어서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해.

나를 위해 도시락 싸줘서 고마워.

나를 꺼내주어서 고마워.

언제나 네가 행복하기를 숨 죽여 응원하고 있어.

언젠가 네가 숨고 싶다면 손 내어 꺼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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