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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름 Mar 09. 2023

퍼스널컬러 갑질 당한 이야기

몇 달 전에 퍼스널컬러 진단받은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제가) 화남 주의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기 위해 한 시간 이른 퇴근을 하고 지하철로 향했습니다. 퇴근길은 늘 끝없는 지옥 같지만, 이날만큼은 타자마자 내리는 느낌이었달까요.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주시는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드려야 할지 리스트를 뽑아야 했고, 미리 예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처음 가보는 길이라 헤맬 거라고 생각하고 넉넉히 시간을 잡아서 갔더니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어요. 들어가서 기다리자 싶어서 들어갔더니 선생님 한 분만 계시더라고요.


1:1 퍼스널 진단이라서 한 분이 운영하시는구나, 큰 공간에 단 둘이 있으니까 분위기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다행히 앞 손님이 없어서 그냥 먼저 시작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기본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어요. 근데 막 그거 아시죠, 감정 없는 간호사 느낌?

"~하셔야 되고여, 이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세여, "

이런 느낌이어서 좀 웃기기도 하고, 마지막 시간이라 피곤하신가보다 했어요.


근데 점점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게, 제가 호응을 해드리면 절대 대답을 안 하시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제 립스틱을 보여드리자마자 상표도 안 보고 그거는 봄 웜톤 색이라고 대답해 주시길래, "우와, 이걸 어떻게 아셨어요?" 하면

"..."

"오 진짜 연구 많이 하셨나 봐요."

"..."

"정말 신기하네요. "

"..."

아니! 참내!

저도 기분 좋으시라고 호응 좀 한 건데, 이렇게 사람 민망할 정도로 대답을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처음에는 못 들으셨나 했어요.

다음에는 민망하신가 했어요.

나중에는 이런 거 싫어하시는 분이구나, 공감하는 걸 싫어하는 극도로 이성적인 분 이시구나, 하면서 저도 반응을 안 하려고 노력해 봤어요. 전 태생이 공감쟁이라서 후와~ 우와~ 오호~ 를 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단 말이죠. 그래도 최대한 줄이려고 애쓰는 제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살짝 속상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요. 퍼스널컬러 진단을 거의 다 마치고 질문을 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저는 이때 사실 머리띠에 꽂혔거든요. 검은 머리에 더 까만 벨벳 머리띠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잘 어울릴 머리띠가 뭐가 있을지 여쭤보려고 질문을 드렸어요.

"제가 머리띠를 하면 검은색도 괜찮을까요?"


그랬더니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머리띠 안 어울리세요. 하지 마세요."


어라, 저는 머리띠를 한다는 전제 하에 색깔을 여쭤본 건데 머리띠를 하지 말라니! 그래도 퍼스널컬러라는 게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하는 거니까 옳게 대답을 하신 거긴 해요.


그래도... 서운해...


"아, 그런가요? 그래도 혹시라도 하고 싶으면 무슨 색이 좋을까요?"


"얼굴 동그라셔서 머리띠 안 어울리세요. 하지 마세요."


아놔,

그런데 제가 최근에 얼굴이 동그랗기로 유명한 여자 연예인이 머리띠를 예쁘게 하고 다니던 게 생각이 난 거예요. 그래서


"그런데 ㅇㅇ 연예인도 얼굴이 동그라신 편인데 머리띠가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ㅇㅇ 연예인은 예쁘시잖아요."


제가 방금 뭘 들은 건가요...?

제가 지금 뼈 맞으려고 거의 10만 원 돈을 들여서 여기까지 온 건가요...?

맞는 말인 거 다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요.

한시간 반 내내 똑같은 말을 해도 최대한 저를 기분 나쁘게 하려고 애를 쓰는 느낌이었다고요.


절망에 빠진 저는 "네.. 안 하겠습니다.." 하고 마무리하고 나왔어요.

후기를 쓰면 2천 원을 준다길래 솔직하게 써버릴까 하다가 프리랜서의 돈줄을 끊고 싶지 않아서 침묵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래, 공감 잘해주고 호응 잘해주는데 진단 다 틀리게 하는 곳보다는, 진단만 정확하게 잘해주는 데가 낫지. 난 얻을 거 다 얻었어!'


하며 위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쁘신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일에 진심이시고, 솔직하시고, 직설적이신 분이다라고 생각하고 넘겼어요.


그런데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그때 그 행동은 분명한 갑질이었다는 것이에요.


직업이 무엇이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요.

남을 평가하는 직업이라고 한들, 그들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고요!


머리띠 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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